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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개괄

사람의 기억은 컴퓨터의 기억장치와 대단히 유사합니다. 컴퓨터의 하드디스크가 있다면 사람에게는 장기기억(long-term memory)이 있습니다. 컴퓨터에 램(RAM)이 있다면 인간에게는 단기기억(short-term memory)이 있습니다.

 

컴퓨터가 실제로 어떤 작업을 하려면 램 상에 정보가 떠 있어야 합니다. 사람 역시 정보가 단기기억에 떠 있어야 합니다. 컴퓨터의 하드 디스크에는 많은 데이타가 저장되어 있습니다. 이들은 저장된 상태로 잠자고 있다가 작업에 필요하면 읽어 들인 다음, 즉 램에 띄운 다음 하고자 하는 작업에 사용됩니다. 컴퓨터의 하드 디스크에 데이타를 저장하는 것처럼 인간도 장기기억에 많은 정보를 저장하고 있습니다. 이들을 필요할 때 불러 내어서 단기기억에 띄운 다음 활용합니다.

 

 

Atkinson & Shiffrin은 1968 년에 다음과 같은 기억의 구조를 제안했습니다. 우리가 어떤 것을 보고 듣고 맛 보고 느낀 정보는 감각등록기(sensory register)로 들어 갑니다. 감각 등록기에 있는 정보 중 어떤 것은 다시 단기기억으로 넘어갑니다. 감각등록기에서 단기기억으로 넘어가는 과정을 주의(attention)라고 합니다. 정보가 단기기억에 떠 있으면, 흡사 컴퓨터가 램에 있는 정보를 이용해서 연산을 하는 것처럼 단기기억 상의 정보를 이용해서 사고나 추론을 합니다. 단기기억에 들어 간 정보 중 어떤 것은 장기기억에 저장됩니다. 그런데 장기기억으로 넘어가려면 특별한 과정이 필요합니다.

 

첫 번째 방법은 리허설(rehearsal)입니다. 반복하는 것입니다. 시험 공부할 때 반복해서 공부한 것이 오랜 시간 뒤에도 저장되어 있습니다.

 

그 다음, 코딩(coding)입니다. 코딩은 단기기억에 떠 있는 정보를 장기기억 내의 정보와 연관짓는 것입니다. 단기 기억에 들어 온 정보가 장기 기억으로 넘어가기 위해서는 반복을 하거나 기존에 알고 있던 것과 연관을 지어야 합니다.

단기기억(short-term memory)

놀랍게도 단기기억 내에 어떤 정보가 떠 있는 시간은 불과 18 초에 불과합니다.(Peterson & Peterson,1959) 리허설을 하거나 코딩을 하지 않으면 단기기억에 있는 정보는 18초 후 사라집니다. 그리고 단기기억에 동시에 떠 있을 수 있는 정보의 양은 밀러의 매직 넘버, 즉 7 플러스 마이너스 2개 (5개 - 9개)의 정보 뭉치(chunks)입니다. 감각등록기에서 단기기억으로 넘어가는 것을 주의라고 하므로, 한 번에 주의를 기울일 수 있는 정보는 7 플러스 마이너스 2 개의 정보인 것입니다.

 

단기기억은 듣는(acoustic) 정보와 관련이 많습니다. 시험 치기 전에 첫 글자만 따서 입으로 반복하면 계속 단기기억에 머물 수 있습니다. 운율을 맞춰 암송한 것이 단기기억에 잘 머뭅니다. 같은 세 개의 정보일지라도 "내사성", "문하성", "상서성" 처럼 "-성"의 운율이 있는 정보 쪽이 "기업실체", "연속기업", "화폐가치 안정"처럼 운율적 정보가 전혀 없는 쪽보다 단기기억에 띄우기가 훨씬 쉬습니다.

 

장기기억은 이와 달리 의미가 있는가(semantic)와 관계됩니다. 기존에 알고 있던 내용과 의미상 연관 관계가 형성되고 나면 장기기억 속에 오래도록 저장됩니다. 그것이 코딩입니다. 정말로 도움이 될 수 있는 공부를 하려면 벼락치기식으로 외우고 쏟아붓고 나와서는 안 됩니다. 기존에 알고 있는 내용과 연관을 지어 가며 이해를 해서 장기기억으로 넘겨야 합니다. 그러므로 기존에 알고 있는 것이 많을수록 더욱 기억하기가 쉬워집니다. 장기기억에 많은 내용이 있을수록 새로 학습한 것을 보다 쉽게 기존의 내용에 연결할 수 있습니다.

장기기억의 개괄

앞에서 살펴본 단기기억과 달리 장기기억은 대단히 큰 저장 용량을 갖고 있습니다. 단기기억이 5-7 개의 정보만을 처리할 수 있는 것과 대비됩니다. 그리고 장기기억은 일단 저장되고 나면 없어지지 않고 계속 남아있는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그러면 왜 시험칠 때는 잘 생각이 안나는 것일까요? 장기기억에 있어서 망각이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어디에 있는지 찾아내지 못한 것이거나 끄집어 내는데 실패한 것입니다. (Anderson. The architecture of cognition, 1983.)

 

시험 문제지를 받아 든 순간 머리가 하얗게 되면서 아무 생각이 나지 않는 경험을 종종 하게 됩니다. 분명히 시험 치기 전에 다 공부하고 읽은 것인데 아무 생각이 안나는 경우입니다. 그것이 과연 망각된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시험 마치고 책을 들추면 어떤 단어 하나가 눈에 띄입니다. 그 순간, '아, 맞다!' 하면서 관련 내용이 줄줄 떠 오릅니다. 망각된 것이 아니라 끄집어 내는 데 실패한 것입니다.

 

반복 및 코딩(coding)을 통해 학습되어서 장기기억에 저장된 내용은 끄집어 낼 실마리만 적절히 주어지면 거의 다 기억해 낼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러한 장기기억에는 몇 가지 원칙이 있습니다.

장기기억에 영향을 미치는 원칙

조직화 원칙(Organization Principle)

조직화 (organization)는 개별 정보 사이의 관계에 의거해서 정보 조각들을 더 큰 단위나 덩어리로 묶어주는 과정입니다. 정보 조각들 사이에 관련성이 있는 경우에는 장기기억에 저장이 용이합니다. 관련성이 없는 경우는 덩어리로 묶는 것이 곤란하므로 기억하기 더 힘듭니다. 1969년, Bower, Clark, Lesgold, Winzenz氏는 실험을 했습니다. 실험 참여자에게 "금", "은", "구리", "싸파이어", "납", 등의 광물의 이름을 불러준 다음 다시 기억해내보라고 했습니다. 광물 이름을 특별한 맥락 없이 불러준 경우 대부분의 참가자가 약 15% 정도밖에 기억해내지 못했습니다. 반면에, "귀금속: 금,은,백금", "일반금속: 구리,알루미늄,납", "보석:루비,다이아몬드,사파이어", ... 식으로 의미 있는 그룹으로 나누어 제시한 경우에는 평균 70% 정도를 기억해냈습니다. 장기기억에 있어서 개별 정보를 조직화할 수 있느냐가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주는 실험입니다.

 

 

시험 공부를 할 때도 중요한 것만 골라서 부랴부랴 외운 것은 시험 끝나자마자 다 잊어버립니다. 시험 칠 때도 잘 생각이 나지 않을 수밖에 없습니다. 내용을 천천히 이해하며 체계적으로 공부한 것은 특별히 외울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훨씬 더 잘 기억됩니다. 광고를 할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광고에 등장하는 아이템들이 서로 관련성이 높아서 쉽게 조직화될수록 소비자의 장기기억 속에 오래 남습니다.

인코딩 특이성 원칙(Encoding-Specificity Principle)

장기기억은 문맥 의존성(context dependent)이 높습니다. 외울 때, 외우는 내용뿐만 아니라 정황상의 단서(contextual cue)도 함께 기억이 됩니다. 인출할 때의 상황이 외울 당시와 비슷할수록 더욱 높은 기억 능력을 보여줍니다. 시험 장소와 똑같은 환경에서 공부를 하면 시험칠 때도 더 기억이 잘 납니다. 공부할 때 커피를 마셨으면 시험칠 때도 커피를 마시면 좋습니다. 둘 다 실제 연구된 사례입니다. 인코딩 할 때의 상황이 끄집어 내는 것에 영향을 미칩니다.

연상 네트웍 모델

연구에 따르면 장기기억은 서로 관련된 매듭(node;노드)으로 얽혀진 하나의 거대한 네트웍의 형태를 갖고 있다고 합니다. 개별 아이디어를 하나의 노드라고 합시다. 이들 노드는 서로 밀접한 관계에 있는 것끼리는 가깝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느슨한 관계를 갖는 것은 몇 단계에 걸쳐 연결되어 있습니다. 어떤 노드가 활성화되면 그 노드와 밀접하게 연결된 노드들이 먼저 떠오릅니다. 계속 생각을 진행하면 하나하나 가까이에 있는 것부터 연관된 노드들이 떠오릅니다.

 

"이순신"하면 "거북선"이 먼저 머리에 떠오릅니다. 계속해서 "난중일기", "한산대첩", "내 죽음을 알리지 말라" 등이 떠오릅니다. "이순신"과 "거북선"은 가까운 노드입니다. 그런데 계속 생각을 해나가다 보면, '거북선은 철갑선, 철로 만든 배...가 어떻게 물에 뜰까...부력... 초등학교 때 수업 시간이 생각난다.. 초등학교 때 담임 선생님은 잘 계실까...' 의 형태로 "이순신" --> 초등학교 담임 선생님까지 떠오릅니다. "초등학교 담임 선생님"과 "이순신"은 여러 단계를 거치는 서로 멀리 떨어진 노드입니다. 이렇게 장기기억 내에 담겨 있는 정보들이 서로 관련된 정도에 따라 네트웍 형태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연상 네트웍 모델(associative network model)입니다. 연상 네트웍 모델은 마케팅 이론을 세우는 데 관련된 두 가지 효과를 잘 설명해줍니다.

점화 효과(The Priming Effect)

장기기억에 있는 것을 끄집어 내어 단기기억에 띄우는 것을 활성화(activation)라 합니다. 활성화는 위의 "이순신" 예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확산된다는 특징을 갖습니다. 불길 퍼지듯 관련 노드들을 끄집어냅니다. 그러므로 가장 최근에 활성화된 개념이 인접한 것을 활성화시킬 가능성이 높습니다. 어떤 개념/정보를 먼저 떠올리느냐에 따라 뒤따라 나올 개념을 어떻게 생각하느냐도 달라집니다. 이것이 점화효과입니다.

 

TV나 영화에서 미남, 미녀를 보고난 뒤에는 연인이 덜 매력적으로 보입니다. 이 예는 실제 조사 보고된 것입니다.(Kenrick & Gutierres, 1980.) 이 때 뒤이어 떠오를 내용과 먼저 떠올린 내용간에 유사점이 많으면 유사점이 더욱 강조됩니다. 뒤이어 떠오른 내용이 초기화된 내용과 비슷하지 않거나 애매모호하면 차이점이 더 부각됩니다.

 

남자의 경우 여자친구가 미녀에 가까우면 영화를 본 뒤 더욱 섹시해 보입니다.

여자친구가 미녀와 거리가 있다면 차이점이 더욱 부각됩니다.

 

점화효과는 연상 네트웍 모델에 의해 쉽게 이해가 됩니다.

처음 아이디어가 무엇을 불러 내는가(연상 시키는가)에 따라 뒤이어 떠올리는 생각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연상 추론(Associative Inference)

어떤 노드 중에는 다른 노드와 특별히 연결이 많은 것이 있습니다. 그런 노드를 건드리는 경우 활성화 확산 속도가 더욱 빨라집니다. 이것이 연상 추론(associative inference)입니다. 연결이 많은 노드를 건드릴수록 활성화가 더 빨리 소진되는 것입니다. 큰 네트웍을 건드리면 특정 노드를 찾는 데 더 오래 걸립니다. 실제 사례를 봅시다.

 

(1) 루머와 싸우려면

맥도날드 햄버거 고기가 벌레를 뭉쳐서 만든 것이라는 악성 루머가 떠돈 적이 있었습니다. 매출은 계속해서 떨어지고 회사는 발칵 뒤집혔습니다.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벌레를 모아서 만드는 것이 지금 방식보다 더 많은 비용이 든다.'

는 식으로 설득하며 홍보를 할까요? 그래서는 안됩니다. 사람들은 '맥도날드 햄버거가 벌레로 만든 게 아니겠구나'라고 이해는 하면서도 괜히 먹기 싫어집니다. "맥도날드" -> "벌레"를 연상시키기 때문입니다. 적절한 해결책은 "맥도날드"라는 노드를 연결이 많은 노드로 바꾸는 것입니다. 곧바로 "벌레"가 떠오르지 않고 다른 노드들이 활성화되게 해야 합니다. '맥도날드는 일관된 맛을 보장한다', '맥도날드는 매장이 깨끗하다', '맥도날드는 전 세계 많은 나라에서 인기다' 등으로 "벌레"와 별 관련이 없어 보이는 사실들을 광고해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맥도날드"->"품질 일관성", "맥도날드"->"코가 빨간 인형", "맥도날드"->"콜라" 처럼 다른 노드들이 먼저 활성화되어서 "벌레"가 떠오를 가능성이 낮아집니다.

 

(2) 미디어의 홍수에서 살아남으려면

소비자는 많은 광고의 홍수 속에 살아갑니다. 개별 광고가 기억 속에 머물 가능성은 매우 낮습니다. 최근에 본 것이 여러 가지를 떠올리면서 과거 기억을 차단하는 "retroactive associative inference"가 작용합니다. 과거의 기억이 최근에 본 것을 묻어버리는 "proactive associative inference"도 작용합니다.

 

장기기억에 있는 것을 끄집어 내어 단기기억에 띄우는 것이 활성화입니다. 그런데 단기기억은 동시에 5-9 개(chunks)의 정보밖에 못 다룹니다. 의자 5-9 개를 놓고 수많은 정보들이 자리다툼을 하는 것입니다. 누가 그 의자에 먼저 앉아서(=먼저 "activation"되어서) 사람들의 단기기억내에 떠오를 수 있느냐의 문제입니다.

 

과하다 싶을 정도로 광고를 많이 회사는 이런 측면을 고려한 것입니다. 반복 광고는 우리 회사 이름이 먼저 떠오르게 하기 위한 것일 뿐만 아니라 경쟁사 이름이 떠오르는 것을 차단하는 효과도 갖고 있습니다. 의자 갯수는 제한되어 있으므로 자기 브랜드 및 자기 브랜드와 밀접하게 연관된 노드들이 먼저 의자를 차지하면 경쟁사 브랜드가 앉을 수 있는 가능성은 더 낮아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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