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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팻 매쓰니 (Pat Metheny) 그리고 2002년 서울 콘서트

이명헌의 경영과 투자 2020. 7. 8. 19:57

마음 속에 풍경화를 그려주는 음악

1999-11-19

 

팻 매쓰니. 저도 이 사람을 알게 된 것이 그렇게 오래 되지는 않았습니다. 6년 전쯤 재즈를 한 번 들어보자는 생각으로 레코드 가게에서 아무 생각없이 구입했던 두 장의 씨디가 있었습니다. 하나는 "Just the two of us"가 담겨있는 "Grover Washington Jr."의 앨범이었습니다. 다른 하나는 "Pat Metheny"의 "Secret Story" 앨범이었습니다.

 

그로버 와싱턴 쥬니어 씨디는 처음 들을 때부터 무척 친숙하게 느껴졌습니다. 귀에 익은 멜로디에 편안한 섹소폰 소리가 좋았습니다. 팻 매쓰니의 씨디는 평범한 이지리스닝 연주곡처럼 들렸습니다. 또 한 장의 장식품 씨디가 쌓이는구나라고 생각하면서 구석에 꽂아 두었습니다.

 

얼마 뒤, 그 두 장의 씨디를 열 번 넘게 듣게 되었을 즈음 그로버 와싱턴 쥬니어 것은 질리기 시작했습니다. 다시 들어도 별 느낌이 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팻 매쓰니의 앨범은 자꾸만 다른 음악처럼 새로운 모습으로 다가왔습니다. 열 번, 스무 번, 반복해서 들을수록 오묘한 멜로디와 전혀 새로운 소리가 들렸고 선율의 아름다움이 더욱 깊게 느껴졌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팻 매쓰니 음악과의 인연은 그 뒤 계속 깊어 갔습니다. 팻의 앨범은 눈에 띄는 대로 다 구입해서 듣기 시작했고 제일 명반이라는 "Offramp"는 네 장이나 구입해서 주변 사람들에게 선물했습니다.

 

혹시 팻 매쓰니 음악을 아직 접해보지 못하신 분이 계신다면 반드시 이 놀라운 뮤지션이 만들어낸 명작들을 접해보시길 추천드립니다. 재즈에 대해서 전혀 관심이 없어도 좋습니다. 롹 음악에 열광하던 분이라도 좋습니다. 클래식만 들어오던 분도 괜챦습니다. 뉴에이지를 듣던 분도 좋습니다. 팻 매쓰니의 음악을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삶이 몇 배 풍성해질 것입니다.

 

팻 매쓰니 음악을 듣는 사람은 이런 말을 많이 합니다.

 

"이 음악을 들으면, 마치 미국의 드 넓은 들판에 선산한 바람을 맞으며 차를 몰고 가는 기분이 든다."
"이 곡을 듣고 있으면 남태평양 한적한 해변가에서 조용히 바다를 바라보고 있는 느낌이 든다."

 

구체적 표현은 다르지만 위와 비슷한 정서를 공통적으로 얘기합니다.

팻 매쓰니 음악이 그렇습니다. 지금 어디에 있든 이어폰을 꼽고 눈을 감으면 선선한 바람이 귓가를 스쳐가는 남빛 바다 한복판으로 날아갈 수 있게 만드는 음악, 그것이 팻 매쓰니 음악입니다.

 

팻 매쓰니의 음반

팻 매쓰니는 많은 음반을 냈습니다. 대표적인 것으로 다음의 세 장을 많이 이야기합니다. 팻의 음반은 잘못 선택하면 낭패(?)를 맛볼 수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재즈 기타리스트여서 쟝르를 넘나들며 다양한 음악적 실험을 감행해왔기 때문입니다. "Song X" 앨범이 대표적입니다. 이 음반은 오넷 콜먼과 함께 만든 Free Jazz로 난해하기가 현대미술 급입니다. 그런 음반부터 듣는 사람은 팻 매쓰니를 전위 음악 하는 사람으로 생각할 지도 모릅니다.

 

일단은 다음의 세 장부터 들어보고 다른 음반으로 영역을 넓혀 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1. Offramp

Offramp

 

늦가을 텅 빈 방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의 황량함을 느껴보고 싶습니까? 새벽 한 시 고속도로를 질주하는 기분을 느껴보고 싶습니까? "Offramp"를 들어보면 됩니다. 잔잔한 피아노와 씬써싸이져 기타의 고독한 음색 그리고 어쿠스틱 기타의 영롱한 울림이 있습니다. "Eighteen"의 약동하는 젊음도 좋고 "James"의 앙증맞은 기타도 좋습니다. "The Bat(part II)"의 명상음악적 분위기도 좋습니다. 모든 곡이 듣는 사람을 잠시 한밤의 정적 속으로 데려다 줍니다. 제일 친숙하게 접근할 수 있고 가장 팻 매쓰니 음악다운 음반입니다.


2. Letter From Home

Letter from home

 

이 음반은 라틴 음악 색조가 본격적으로 묻어나온 "Still Life (Talking)" 앨범처럼 라틴음악의 분위기가 나면서도 팻 매쓰니 특유의 한 발 비켜선 듯한 관조적 멜로디가 살아있는 명반입니다. 이전 앨범보다 훨씬 스케일이 커져서 광활한 바닷가를 연상시키는 선율과 싸운드가 스트레스로 찌든 머리를 깨끗이 씻어냅니다. 남태평양 바닷가를 연상시키는 "Dream of the return"의 몽롱함도 좋고 타이틀 트랙 "Letter From Home"의 소름끼치도록 아름다운 피아노 멜로디도 좋습니다. 연주곡이 왜 상상력을 더 불러일으키는지를 잘 보여 주는 앨범입니다.


3 Secret Story

 

Secret story

 

이 음반은 팻 매쓰니가 팻 매쓰니 그룹에서 벗어나 혼자 만든 음반입니다. 첫 곡의 묘한 동양적 멜로디부터 맨 마지막 오케스트레이션까지 정말 어느 것 하나 빼놓을 수가 없습니다. 플레이 버튼을 누른 후 눈을 감고 있으면 한 시간여 동안 먼 세계를 여행하고 올 수 있게 하는 음반입니다.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멜로디도 있고(Always and forever) 한없이 낙관적인 기타선율도 있습니다.(Sunlight) 장중한 클래식 넘버도 있고(Not to be forgotten) 새벽녁의 고독함을 그리는 락적인 곡도 있습니다.(The truth will always be) 비오는 강가에서 모닥불을 쬐는 듯한 느낌을 주는 곡과(Rain river) 힘겨운 삶의 여정을 말없이 이어나가는것을 묘사하는 듯한 곡(Antonia) 등, 수록곡 전체가 명곡입니다.

 

처음 이 음반을 들었던 1999년에는 이 음반은 한 장짜리인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그 뒤 애플뮤직을 구독하고서 앨범을 찾아 보니 더블앨범이더군요. Disk 2의 수록곡은 20여년을 들어온 Disk 1의 곡들, 그 이상으로 좋았습니다. 너무 좋아서 아껴듣고 싶을 정도로 좋았습니다. 디스크 2의 수록곡인, Back in Time, Look Ahead (F Csus), Understanding, A Change in Circumstance, Et Si C'etait La Fin (As If It Was the End)을 처음 들었을 때 감동은 표현하기 힘들 정도였습니다. 이런 좋은 곡이 앨범에 따로 있었다는 사실을 몰랐다는 게 너무 억울할 정도였습니다. 

 

피하는 게 좋은 앨범은 "Song X"와 "Zero tolerance for silence" 입니다. 일부 평론가가 자기현시적인 글과 함께 "Song X" 를 추천하기도 합니다만, free jazz 음악을 좋아하는 분이 아니라면 말리고 싶습니다.

 

팻 매쓰니의 Secret Story 라이브 무대 중 The truth will always be를 링크해봅니다. 

 

 

 

 

팻 매쓰니 2002년 서울 공연 후기

7년만에 서울을 다시 찾은 팻 매쓰니의 2002년 9월 공연을 보았습니다.

5일 연속에 매일 3시간 정도를 연주하는 강행군이었습니다. 7년 전 잠실 체조 경기장 공연은 경기장 공연이었던 관계로 팻 매쓰니를 지척에서 느낀다는 측면보다는 그의 음악을 라이브로 들어본다는데 큰 의미가 있었지요. 그에 반해 이번 공연은 팻 매쓰니를 가까이에서 느껴볼 수 있어서 좋았습니다. 엘지 아트센터는 1-2층으로 나뉘어진 수백 명 객석 규모의 공연장이었습니다. 드럼 소리가 마이크를 거치지 않고도 바로 들릴 정도였습니다.

 

7년 전 공연은 공연장 규모 면에서나 사운드 측면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느낌이었는 데 반해 이번 공연은 연주자의 손놀림 하나하나까지 볼 수 있었다는 점에서 또 다른 재미가 있었습니다. 일전에 KBS FM "재즈수첩" 디제이가 아주 공감되는 얘기를 하더군요. 팻 매쓰니가 종래의 재즈나 퓨젼재즈 뮤지션과 확연하게 달랐던 점은 음악이 불러일으키는 느낌과 정서가 전례 없이 새로왔다는 얘기입니다. 기존의 재즈가 복작복작하고 맥주 냄새 물씬 풍기는 클럽에서 열정적으로 임프로바이제이션을 하는 주말 밤의 느슨한 분위기를 떠올리게 했다면, 팻 매쓰니의 음악은 뉴에이지 음악처럼 넓은 평원을 질주하는 느낌이나 미국 중서부의 거대한 풍광을 연상케 합니다. 연주상으로는 재즈나 퓨젼재즈에 기반을 두고 있을지 모르지만 그가 음악 씬에 가져다 준 느낌은 전통적 의미의 재즈와 전혀 달랐습니다.

공연장과 멤버

스테이지는 크지 않았습니다.
7년전 공연 때는 무대를 올려다 봐야 했기 때문에 연주인과 객석 사이의 거리감이 매우 컸습니다. 엘지 아트센터의 스테이지는 객석에서 무대를 내려다 보는 형태로 되어 있었기 때문에 거리도 가까왔을 뿐만 아니라 뮤지션의 연주나 표정을 살펴보는 데도 무척 좋았습니다. 특기할 만한 것으로 드럼 셋팅을 옆으로 돌려서 해 놓았더군요. 개인적으로 참 마음에 들었습니다. 드럼을 전면으로 셋팅을 하는 경우 드러머의 스냅은 보이지 않고 심벌이 출렁거리는것만 보일 뿐입니다만 옆으로 셋팅해 놓은 덕에 드러머의 손,발을 자유롭게 볼 수 있었습니다. 퍼커션은 무대 상단에 높게 세팅되어 있었습니다. 보컬과 퍼커션, 때로는 기타, 베이스까지 자유자재로 연주해준 카메룬 출신의 연주인 리챠드 보나가 퍼커션을 맡아서 리듬을 더욱 풍성하게 만들어 주었습니다.

 

멤버는 팻 매쓰니를 포함해서 모두 5명이었습니다.
기타엔 팻 매쓰니.

드럼엔 멕시코 출신의 재즈 드러머 안토니오 산체즈.

베이스엔 낯익은 스티브 랏비. (팻 매쓰니의 소개에 따르자면 악기나 기기가 고장나는 경우 스티브 랏비가 다 수리한다고 합니다.^^)

퍼커션과 베이스기타 및 여러 악기를 다루는 것은 물론이고 보컬까지 담당해준 멀티-인스츠루멘털리스트 리챠드 보나. 트럼펫과 보컬 그리고 싸운드 이펙트를 담당한 이색적인 베트남계 뮤지션 쿠옹 부.

마지막으로 변함없이 팻 매쓰니 곁을 지켜주고 있는 라일 메이즈(Lyle Mays)로 구성된 라인업이었습니다.

 

팻 매쓰니가 멤버 한 명 한 명 소개할 때마다 "최고의 베이시스트 중의 한 명인, 현존 최고의 드러머 중의 한 명인..."으로 격찬을 하더군요. 인사치례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사실상 팻 매쓰니가 함께 연주하기 위해 택한 파트너라는 사실은 동시대 재즈 뮤지션의 탑 클래스라는 것을 확인해주는 것입니다. 실제로 팻 매쓰니 그룹 멤버들의 이력을 보면 최고 중의 최고를 모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다들 음악적 신동 아니었던 이가 없고 다니던 음악 학교는 장학금으로 다녔으며 출중한 실력으로 어디서나 주목을 받아서 이른 나이에 세계적인 뮤지션으로 떠오른 인물들입니다.

팻 매쓰니 자신이 천재 뮤지션의 길을 그대로 밟아온 장본인이며 일찍부터 가르치는 일을 했던 사람이기 때문에 인재를 보는 눈이 예사롭지 않았을 것입니다.

 

팻은 트럼펫을 담당한 쿠옹 부를 발탁한 과정에 대해 잠시 얘기를 했었습니다. 팻이 어느 날 라디오에서 아주 놀라운 음악을 들었다고 합니다. 너무 독특한 음악이어서 이 뮤지션이 참여한 앨범들을 구해서 다 들어보았는데 독보적인 연주를 들려주고 있는 느낌을 받아서 지체 없이 연락을 취했고, 팻과 쿠옹부는 함께 연주를 하게 됩니다.

 

라인업을 보면 특징적인 것이 매우 다양한 백그라운드를 가진 뮤지션들이 두루 망라되어 있다는 점입니다. 아프리카 출신의 뮤지션에서부터 아시아계 뮤지션까지. 또 드러머는 라틴계입니다. 이렇게 다양한 배경 속에서 음악적 성숙을 기해왔던 뮤지션들과 함께 연주를 함으로써 팻 매쓰니 그룹의 음악은 시대의 전위에 서서 다양한 실험을 감행해 볼 수 있었던 게 아닐까 합니다. 뮤지션 팻 매쓰니에만 주목할 수도 있겠지만은 어쩌면 뛰어난 뮤지션들을 발굴해서 새로운 차원의 음악 형태, 음악 스타일을 제시하는 음악 감독으로서의 팻 매쓰니의 능력에도 역시 주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몇 년 전부터 월드뮤직이라는 쟝르가 우리 나라에서도 상당한 인기를 모으고 있습니다. 영,미를 중심으로한 음악에서는 사실상 더 나올 것이 없다는 것을 자각한 뮤지션들이 새로운 가능성의 원천으로 이른바 제3 세계 쪽을 살펴보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월드 뮤직은 음악적 완성도는 매우 높을 수 있지만 차칫 그 음악을 탄생시킨 국가나 민족 또는 지역적 특색에 지나치게 얽매일 수 있습니다. 보편적인 설득력이 약할 수 있습니다. 팻 매쓰니는 우리 귀에 이미 익숙한 기존의 문법 속에서 여러 스타일의 음악을 두루 차용하고 용해해서 새로우면서도 친숙하게 접근할 수 있는 음악을 만들어내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월드뮤직 실험을 성공적으로 해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연주

멤버 한 명 한 명이 클래식에서 재즈까지 두루 음악을 전공했고 또 작곡이나 임프로바이제이션은 물론이고 못 다루는 악기가 없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연주에 대해 이러니 저러니 한다는 것이 웃기는 얘기인 것 같습니다. 그냥 인상기 수준에서 몇 자 적습니다.

 

퍼커션과 관악기, 때로는 일렉트릭 베이스까지 연주하면서 페드로 아즈나를 방불케 하는 아름다운 목소리로 보컬까지 맡아준 리챠드 보나는 놀라왔습니다. 보컬도 일품이지만 공연 후반부 팻 매쓰니와 드러머 안토니오 그리고 리챠드 보나 셋이서 짧은 소품을 연주할때 보여준 베이스 솜씨 또한 대단했습니다. (보나는 자코의 음반을 듣고 재즈에 빠져들게 되었다 합니다) 베이스를 저렇게 잘 치는 사람이 다른 악기를 맡고 있다면 어떻게 되는거야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사실 보나는 베이씨스트라고 합니다.

 

 

리챠드 보나의 목소리는 페드로 아즈나만큼 맑고 깨끗하면서도 아프리카인 특유의 필이 묻어 있었습니다. 보나가 만든 스캣 멜로디는 아프리카 음악을 곧바로 연상시켰습니다. 팻의 소개에 따르면 쿠옹 부 역시 놀라운' 보컬리스트라고 했습니다만 그 날 공연에서는 그다지 인상적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트럼펫 연주가 멋있더군요. 실은 팻 매쓰니의 신써싸이져 기타 톤이나 라일 메이즈의 톤 중에 트럼펫 톤과 아주 유사한 것이 많습니다. 그래서인지 트럼펫이라는 악기가 팻 매쓰니 그룹 싸운드와 아주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었던것 같았습니다. 역시 관악기가 가미된 사운드는 웅장함과 규모를 느끼게 했습니다.

 

안토니오의 드럼은, 연전에 나온 "Question and answer" 앨범의 Roy Haynes가 생각나는 것이었습니다. 그루브를 놓지 않고 쉴 새 없이 싸운드를 채워주는 드럼이었습니다. 팻 매쓰니가 간혹 트리오 형태로 낸 앨범들을 들어보면 [기타+베이스+드럼]의 단촐한 편성임에도 싸운드가 매우 풍성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그건 팻의 기타 연주가 갖는 큰 존재감도 때문이기도 하지만 드러머의 화려한 심벌 연주가 계속해서 공백을 채워주고 있다는 점도 큰 영향을 미치는 것 같습니다.

 

이번 공연에서 안토니오 산체즈가 들려준 드럼도 그런 선상에 있었습니다. 팻 매쓰니와 호흡을 맞췄던 다른 드러머들 모두 그랬지만, 특히 심벌 다루는 테크닉이 대단했습니다. 왼손은 그립을 바꿔가면서 2연음을 두드리면서 오른손은 여러 싸이즈의 라이드 심벌을 조합해서 영롱한 울림을 만들어 내더군요. (참고로, 안토니오는 "질드전 어워드"를 수상함) 자신이 오리지널을 연주한 것이 아닌 곡도 앨범 그대로의 싸운드와 프레이즈로 재현해 냈습니다.

 

이번 컨서트를 보면서 느낀 점 중의 하나는 조용하게 연주할 줄 안다는 것의 중요함입니다. 이게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조용하게 연주하면서 기본적인 힘을 잃지 않는 것은 무척 어렵습니다. 전체 사운드 볼륨은 엔지니어 쪽에서 조절합니다만 이번에 대가의 연주를 지척에서 보면서 느낀 것은 역시 소리의 강약을 확실하게 안다는 것 그리고 곡의 강약에 대해서도 멤버 모두가 함께 호흡하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이 점은 다른 뛰어난 뮤지션의 라이브를 보면서도 공통적으로 느낀 것입니다. 확실히 대가들은 소리의 크기를 알고 연주를 합니다. 아주 조용하게 시작해서 곡을 전개해 나가다가 절정에서 모든 것을 쏟아놓고 이를 다시 적절한 크기로 마무리할 수 있다는 것. 열광하는 청중 앞에서 흐름을 스스로 조절해 갈 수 있다는 것은 역시 대단한 것 아닌가 싶습니다. 조용히 연주하면서 자기 톤을 재현한다는 것은 정말 간단한 일이 아닙니다.

프로모션 투어는 새 앨범 홍보를 하기 위한 것이니 만큼 우리 귀에 익숙한 곡 보다는 새 곡들을 많이 연주합니다.
이번 컨서트도 새 앨범 수록곡이 많았습니다. 간간히 귀에 익숙한 곡들을 들려주기도 했습니다.

역시 어디서나 빠지지 않는 "Are you going with me?". 청중들의 호응도 이 때가 거의 절정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팻 매쓰니가 42현 피카소 기타를 현란하게 연주하는 것으로 시작, 쿠옹부가 트럼펫으로 라일 메이즈의 솔로 프레이즈를 연주하는 것으로 문을 열고, 이어서 드럼과 베이스 그리고 건반이 함께 연주에 참여하는 식으로 연주되었습니다.

 

 

저는 그 곡과 함께 연주해준 "The first circle"이 가장 인상적이었습니다. 곡의 시작을 알리는 멤버들의 박수 소리에 청중들도 같이 박자에 맞춰 박수를 치며 호응을 했고 이어 등장한 팻 매쓰니의 어쿠스틱 기타와 리챠드 보나의 스캣을 들을 때는 소름이 돋을 정도였습니다. 음반을 통해서 들을 수 있었던 소리 하나하나가 사실은 치밀하게 연주되지 않은 것이 없다는 것을 직접 라이브로 보니 더욱 절감할 수 있었습니다. 팻 매쓰니의 어쿠스틱 기타 연주 뒷 편을 파도처럼 들어왔다 나갔다 하던 심벌 소리라든지 베이스 연주가 들어가기 직전의 실로폰 등을 직접 연주하는 것을 보니 한 곡 한 곡이 얼마나 섬세하게 다듬어지고 플레이된 것인가 새삼 느꼈었습니다.

 

 

"The first circle"의 연주를 듣고 있는 동안은 흡사 시원한 바람이 부는 호숫가에 앉아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습니다.

연주만으로 공간을 전혀 다른 색채로 채색할 수 있다는 것.

제가 봤던 어떤 컨서트에서도 시원한 싸운드로 가슴이 후련해지는 느낌을 받거나 뮤지션과 관객이 함께 몰입하는 데서 오는 감동은 있었을 지언정 공연장을 전혀 다른 공간으로 만드는 마력적인 음악을 들어보지는 못했습니다. 팻 매쓰니의 음악은, 특히 머릿속에 풍경화를 그려주는 듯한 80년 전후에 나온 곡들은, 앨범을 들을 때와 마찬가지로 실제 라이브에서도 새로운 차원의 감동을 주었습니다.

 

우리 나라 팻 매쓰니 팬들의 상당수는 80년을 전후한 팻 매쓰니의 중반기 음악을 가장 좋아한다고 합니다.

"Offramp"나 "Letter from home", "The first circle", "Still life", "80/81" 앨범입니다. 저도 팻 매쓰니 초기 음반에서 들어볼 수 있었던 컨템포러리 재즈, 퓨젼재즈를 모색하던 곡보다는 스케일이 더 커지고 음악적 색채가 다양해진 중반기 연주가 끌립니다. 80년대 중후반을 지나 90년대에 나온 음반들은 과하게 나가버린 듯한 느낌이 있습니다. (물론 "Secret story" 앨범은 최고입니다) 그래서 프로모션 투어임에도 80년대 곡들을 많이 들어볼 수 있었으면 하는 소망을 갖고 있었습니다만 그다지 많이 들어볼 수는 없어서 아쉬웠습니다.

 

중간에 프리 재즈 스타일의 곡을 쿠옹부를 위해 연주했었습니다. 팻의 소개에 따르면 공식적으로 레코딩 되지는 않았던 곡이라고 합니다. 멤버들의 임프로바이제이션을 즐겨볼 수 있을거라고 했는데, "Offramp" 앨범의 타이틀 트랙 "Offramp" 곡과 유사한 스타일이었습니다. 쿠옹부의 트럼펫 연주의 독특함을 확실하게 드러내주는 곡이라 하는데 조금 어렵지 않았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 곡을 들으면서 문득 저렇게 형식을 무너뜨리며 요란하게 표출하는 모습과 홀로 조명을 받으며 조용히 어쿠스틱 기타를 어루만지는 팻의 모습 중 어떤 것이 그의 진면목일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인간 감정의 극단적인 양면성을 서정적인 모습과 혼란,격정이 혼합된 모습을 통해서 드러내 주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도 해보았습니다.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두 스타일이 공존하면서 팻 매쓰니 스타일을 이룬다는 점을 새삼스럽게 느꼈습니다.

 

공연장이 크든 작든 사운드의 왜곡이 많든 적든 그 어디서나 팻 매쓰니의 음악은 청중을 새로운 차원으로 데리고 가는 음악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껴 본 공연이었습니다. 밍기적거리다가 공연 시작 30분이 지나서야 엘지 아트 센터에 도착해서 전반부를 조금 놓쳐버린 것이 조금은 아쉬웠습니다만은 3시간이라는 공연 시간은 팻의 음악세계를 느껴보는 데 충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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