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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무제표만 보고 미리 알 수 있었을까?

2008-3-8

 

삼성전자라는 안정적인 납품처를 갖고 있는 30년이나 된 코스닥 기업 (주)우*이 부도가 났습니다. 2008년 2월 29일 기업은행과 농협에 돌아 온 91억6400만 원의 약속어음을 결제하지 못 했기 때문인데요. 업황이 나빠져서 최근 급속히 영업이익이 줄어들기는 했지만 30년이나 지속되온 기업이 부도가 날 것으로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피해를 입은 채권자, 투자자가 적지 않습니다. 더구나 이 회사는 부도나기 불과 3일 전 전환사채(CB) 발행을 통해서 150억 원을 조달하려고 했고 그 중 4.3%인 6억 5000만 원이 청약되었습니다. 그리고는 곧 부도가 났습니다. 전환사채에 투자한 사람들은 하루 아침에 황당한 일을 당한 것입니다. 주간 증권사인 한양증권과 신용평가회사에 대해 소송을 제기한다는 뉴스도 나오고 있습니다.

 

 

어떻게 이런 과정이 진행된 건지 궁금해서 우*의 사업보고서를 읽어 보았습니다. 부도나는 기업의 재무적인 특징이 어떤 것들이 있는지 한 번 살펴 보는 것이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았구요.

 

2007년 9월 결산 당시,

유동자산 2000억 원 (당좌자산 800억 + 재고자산 1200억)

부채총액 2500억 원 (유동부채 1700억 원+고정부채 750억 원)

자본총계 710억 원

 

유동성과 관계되는 주요 자산,부채 현황은 위와 같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부분은 현금화가 용이한, 즉 유동성이 높은 유동자산이 부채총액을 어느 정도 커버하느냐입니다. 삼성전자라는 대기업에 편중된 매출, 특히 매출액의 상당부분이 LCD의 백라잇(backlight)에 몰려 있는 이 기업의 특성상 재고자산의 빠른 현금화는 쉽지 않을 것 같습니다. 더구나 업황이 나쁠수록 현금화가 더 어려울 것이기 때문에 유동성 위기가 오면 재고자산의 진정한 자산적 가치는 더욱 줄어듭니다. 그러므로 보수적 투자자라면 당좌자산(quick assets)이 과연 부채를 어느 정도 커버하느냐에 집중해서 보는 게 좋을 것이고, 우*의 경우 당좌자산의 3배가 넘는 부채를 가졌고, 특히 단기성이며 영업활동과 직결되는 부채인 유동부채가 1700억 원이나 된다는 점이 우려할 부분입니다. 유동비율(=유동자산/유동부채) 역시 1 미만이므로 바꿔 얘기하면 정상적인 영업활동을 하면서 이미 유동성에 문제가 생길 소지가 있는 것입니다. 여기까지 보았을 때 일단 좋지 않은 사인이 보입니다만 사실 이 정도 갖고 부도난다면 부도날 기업은 수두룩합니다. 문제는 부채비율에 있습니다.

 

부채비율을 보니까, 자본총액 대비 약 3배에 이르는 부채군요. 부채비율 300%입니다. IMF 구제금융 사태 당시의 우리 나라 기업들의 부채비율이 이랬지요. 적정 부채 비율은 현금흐름이 좋은 업종과 그렇지 않은 업종에 따라 다르겠습니다만 300%는 낮은 수준이 아닙니다. 그러면 이자비용으로 매년 얼마 정도를 쓰고 있었을까요?

 

지급이자랑 회사채에 대한 이자를 합해서 보니 2005, 2006 회계연도의 경우 연간 약 130-140억 원을 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회사의 영업이익은? 약 150억 원 전후입니다. 정상적인 상황에서요. 번 돈의 대부분이 이자로만 다 빠져 나가고 있는 것입니다.

 

여기까지만 봐도, 이 기업은 투자하려면 상당히 주의해야 한다는 생각을 해 볼 수 있습니다. 영업이익은 매출채권(수취채권) 형태로 존재하는 것도 이익으로 잡히기 때문에 실제 현금유입이 없는 이익도 상당수입니다. 특히나 삼성전자 같은 대기업과 거래한다면 빠른 현금회전은 쉽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자는 정해진 날짜에 계속 떨어져 나가야 합니다. 들어 올 돈은 외상으로 깔아 놓았는데 나갈 돈은 통장에서 정시에 빠져 나간다, 게다가 번 돈으로 이자 겨우 커버할까 말까다?

결정적으로, 발생주의 회계로 기록되는 재무상태표손익계산서와 달리 실제 현금흐름을 기준으로 작성되는 현금흐름표를 보면 유동성 위기에 처한 기업의 모습이 극적으로 잘 드러납니다.

2007년 9월, 즉 3/4분기까지 누적 현금흐름은 다음과 같습니다.

 

영업활동으로 인한 현금흐름 -200억 (전년도 동분기 -18억)

투자활동으로 인한 현금흐름 -120억 (전년도 동분기 -90억)

재무활동으로 인한 현금흐름 +350억 (전년도 동분기 +61억)

 

위 현금흐름을 한 마디로 요약하면, 영업으로 돈이 들어 오는 것이 아니라 영업 손실을 빚을 내서 메꾸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영업활동으로 인한 현금유출이 큰 폭으로 늘어났는데요. 영업활동으로인한 자산부채 변동이 전년에 비해 -130억 원 이상 증가한 때문이라는 것이 이 기업의 유동성 위기를 짐작케 합니다.

 

2005년만 해도 재무활동으로 인한 현금흐름이 +2억 원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던 것이 2년만에 350억 원을 외부에서 조달해 오는 상황으로 악화됩니다. 영업에서 현금 잃고, 공구나 기계장치 등 불가피한 투자를 하면서 이 모든 것을 빚으로 메꾸는 식인 겁니다.

 

재무적으로 좋은 회사의 현금흐름은,

영업 (+++)

투자 (-)

재무 (-)

 

입니다. 영업활동에서 나온 현금유입을 적절히 투자하고 빚을 갚아나가는 것입니다.

 

위의 (주)우* 현금흐름을 보고도 투자를 한다면 위험한 기대를 한 것입니다. 작년 3/4분기 분기보고서상으로도 이미 우*은 심상치 않은 상황으로 몰리고 있다는 것을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이상의 내용을 바탕으로 투자 리스크를 판단할 때 생각해 볼 점은 이렇습니다.

 

1. 가급적 부채비율이 낮은 기업이 좋다.
2. 부채비율이 높다면 이자비용이 어느 정도나 되는지 그리고 그게 영업이익으로 충분히 커버되는지 확인해야 한다.
3. 부채비율이 높다면 항상 현금흐름을 주시해야 한다.
4. 매출처가 한 곳에 몰린, 매출 품목이 한두 가지에 치우친 기업은 갑자기 위기에 처할 수도 있다.
5. 기술의 부침에 영향을 받는 업종은 좋지 않다.

 

현금성자산이 많아서 이자와 배당을 받아 가며 유보해서 쌓아두고 있는 기업도 아주 많습니다. 영업이 잘 되어서 계속 돈을 벌면서도 그렇습니다. 그런 우수한 기업들이 많은데 굳이 위험천만한 기업에 투자할 이유는 많지 않습니다. 수익율도 중요하지만 절대로 잃지 않을 수 있도록 안전성을 재차 확인한 뒤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투자 리스크를 판단함에 있어서 재무제표가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이번 우* 부도 사건을 통해 잘 알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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