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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11-1
어떤 비즈니스에 투자할 것인가라는 문제는 크게 봐서 두 가지 요소에 의해 좌우됩니다. 하나는 가격입니다. 아무리 좋은 비즈니스라도 비싸게 거래되고 있다면 투자가치가 크지 않습니다. 'Price is everything.'이란 표현이 이를 잘 함축하고 있습니다.
어떤 비즈니스에 투자할 것인가를 결정하는 두 번째 요소는 그 비즈니스가 얼마나 훌륭한가라는 부분입니다. 즉, 그 비즈니스가 질적으로 어떠한가입니다.
상점을 통째로 인수하는 것이든, 공개된 기업 지분의 일부를 구입(주식투자라고 불리우는)하는 것이든 위의 두 가지 요소, 즉, 얼마에 살 것인가라는 문제와 어떤 것을 살 것인가에 대해 명확한 판단 기준을 갖고 있는 것이 투자 성공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가격의 문제, 즉 밸류에이션(valuation)은 여러 기준과 방법이 있고 수백 페이지 분량의 책이 여러 권 나와 있을 정도로 많은 내용이 있습니다. 이 글에서는 두 번째 요소인 어떤 성격을 갖는 기업이 투자 가치가 큰가에 관해서 조금 살펴 볼까 합니다.
CEO가 매출액 증가에 집착하는 이유
작은 가게를 운영하든 다국적기업의 최고경영자로 일하고 있든 모든 CEO는 공통적으로 새로운 수익원과 새로운 매출을 만들어낼 수 있는 무엇을 찾는 데 큰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왜일까요?
손익계산서를 보면 잘 알 수 있듯 기업의 비용은 크게 재료비라 할 수 있는 매출원가 그리고 판매및관리비, 마지막으로 금융비용 등의 재무적 비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영업과 직접 관련이 있는 비용은 매출원가와 판관비입니다. 이 두 비용이 어떤 특징을 갖는지 생각해 봅시다.
인플레이션이 진행되면서 물가는 점점 오르는 게 보통입니다. 원자재 가격 역시 대체로 이에 맞춰 상승합니다. 매출원가는 조금씩 커지는 것입니다. 판관비는 어떻습니까? 매년 물가상승률을 감안해서 임직원 급여도 올라가는 것이 보통입니다. 광고비, 임차료, 차량 관련 비용 등 기타 간접비도 늘어갑니다.
비용이 계속해서 늘기 때문에 매출액이 늘지 않으면 똑같은 매출을 기록하고도 이익은 지속적으로 줄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입니다. 이런 이유로 CEO는 새로운 수익원 창출에 고민합니다. 현상태로 영업이 유지되면 현상유지되는 것이 아니라 계속 퇴보하게 구조가 짜여져 있기 때문입니다. 이 문제를 외면하고 상황을 방치하면 최악의 경우 구조조정이라는 이름으로 인력을 줄이고 공장을 폐쇄해서 다시 비용을 낮추어야 합니다. 미뤄 둔 숙제를 큰 고통 속에서 하는 것입니다.
신상품 개발 vs 가격결정능력
그처럼 중요한 매출액을 늘리려면 크게 두 가지 방법이 있습니다. 하나는 새로운 수익원을 개발하는 것입니다. 새로운 상품, 새로운 서비스를 창출하면 매출액이 커집니다. 또는 제품의 신시장을 개척한 경우도 매출액이 늘어날 수 있습니다. 몇 년 간은 손익분기점(BEP)에 이르지 못 하더라도 성공적으로 안착한다면 이후 기업 이익을 늘리는 데 큰 역할을 할 수 있습니다.
매출액을 늘릴 수 있는 다른 방법으로, 기존 제품과 서비스의 가격을 인상하는 것이 있습니다. 원가 상승을 반영하기 위해서 가격을 올리는 것은 물론이고, 원가 상승과 관계 없이 가격을 올릴 수 있다면 더욱 좋을 것입니다.
두 가지 중 어떤 것이 더 좋을까요? 물론 둘 다 잘 하는 기업이 최고입니다. 그리고 둘 다 동시에 추구해 나가야 하는 게 당연합니다. 문제는 전자에 비해 후자가 훨씬 어렵다는 데 있습니다. 전자는 연구개발 비용이나 초기 마케팅 비용, 운영 자금 등의 자금 여력만 있다면 어렵지 않게 시도해 볼 수 있습니다. 시도는 해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가격을 올리는 것은 아무 회사나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거의 대부분의 기업은 가격을 올리는 순간 경쟁자에게 시장을 빼앗기게 되어 있습니다. 시도 자체가 쉽지 않습니다.
굳이 양자택일을 한다면 어느 쪽이 더 매력적인지 생각해 봅시다. 전자에 능한 기업은 다이내믹하고 화려해 보일지는 모르지만 계속해서 불확실한 무엇을 만들어 내야만 살아 남을 수 있는 기업에 가깝습니다. 현재 자산이나 이익 규모가 아무리 크더라도 이런 회사는 어떤 측면에서는 대단히 취약한 기업입니다. 끊임없이 페달을 밟아야만 서 있을 수 있습니다. 페달을 밟는 대로 바퀴가 도는 것도 아닙니다. 후자는 10년 전, 심지어 50년 전에도 똑같거나 비슷한 제품을 팔고 있었기 때문에 지루해 보일 지 모르지만 가장 예측가능성이 크고 안정적이며 강력한 회사인 것입니다.
가격을 올려라
물가상승율 정도만큼이라도 제품과 서비스의 가격을 올려 갈 수 있는 비즈니스도 그리 많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비즈니스는 물가는 올라 가는데도 제품 가격은 올리기는 커녕 경쟁에 치여 도리어 가격을 내려야 하는 열악한 경제학을 기반으로 하고 있습니다.
매일 구입하는 많은 제품과 서비스 중에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가격이 거의 변하지 않은 것이 어떤 게 있는지 한 번 생각해 봅시다. 어렵지 않게 몇 가지를 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게 가격을 물가상승율만큼도 올리지 못 하는 비즈니스는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를 창출해 내지 못 하는 이상 마진이 계속 줄면서 결국엔 시장에서 사라집니다.
물가상승률만큼 가격을 올리고도 시장을 잃지 않을 수 있다면 어느 정도는 경제성이 있는 비즈니스라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정도도 사실 쉽지 않습니다. 만약 물가가 오르는 이상으로 가격을 올려 갈 수 있다면 어떨까요? 그런 비즈니스는 신상품 개발을 하지 않고도 계속해서 이익 마진을 늘려 갈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축적된 자본을 바탕으로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는 일도 훨씬 수월해질 것입니다. 매출 원가 이상으로 가격을 올려 갈 수 있는 비즈니스야말로 오랫동안 보유할 수 있는 탁월한 비즈니스인 것입니다.
실제 물가상승율과 제품가격의 변화
한국은행 경제통계국에서 2005년 8월에 "숫자로 보는 광복 60년"이라는 자료를 내놓았습니다. 이 자료는 광복 후 60년 동안 우리 나라 경제가 얼마나 커져 왔는지 여러 각도에서 분석한 것입니다.
자료의 세 번째 챕터는 "물가변동"을 다루고 있습니다. 1945년부터 1965년까지는 "정부수립, 전시자금 및 경제개발자금 조달을 위한 통화 증발, 재정지출 확대 등의 영향으로 약 4천배(연평균 50%)나 급등"했으므로 논외로 하고, 우리 경제가 어느 정도 정상적인 궤도에 접어 들었다고 볼 수 있는 1975년부터 2005년까지의 데이타를 바탕으로 위에서 논한 내용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봅시다.
일단 자료에 나온 몇 가지 팩트를 볼까요?
(1) 1945-2005년까지 주요 생필품 가격 상승배율은 소비자물가지수 상승배율(약 11만 배)을 크게 웃돌았음: 서울 시내버스 요금(500만 배), 쇠고기(192만 배), 쌀(55만 배), 금(13만 배)
(2) 1975-2005년까지 소비자물가지수는 8배 상승한 데 반해 설렁탕, 짜장면 등 외식 가격과 대학납입금은 20-30배 상승했음
(3) 1975-2005년까지 냉장고 가격은 오히려 하락했고 선풍기, 형광등은 2-4배 상승에 그침
(4) 1975-2005년까지 서울지역 땅값은 약 29배 올라서 쇠고기, 버스요금 등 주요 생필품 가격 상승과 비슷하게 오름.
대체로 먹는 것을 비롯한 생필품을 파는 비즈니스는 물가상승율 이상으로 가격을 올려 올 수 있었던 데 반해 전자제품 등의 테크널러지에 의존하는 공산품 가격은 반대로 하락해 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것은 신규진입자가 많아서 가격을 올리지 못 한 것 때문이기도 하지만 기술의 발전으로 원가가 계속해서 하락했기 때문에 가격경쟁력을 무기로 가격을 낮추어 왔던 것 때문이기도 합니다. 문제는 우리만 원가를 낮출 수 있는 게 아니라 다른 회사도 똑같이 가격을 낮출 수 있으므로 싸게 팔아도 시장을 계속해서 키울 수는 없었다는 데 있습니다. 지난 10년간 퍼스널컴퓨터(PC) 가격이 어떻게 변화되어 왔는지 한 번 생각해 봅시다. 사양이 좋아진 것은 논외로 하더라도 보급형 사양의 가격은 계속해서 하락해 왔습니다. 수많은 경쟁자가 진입하면서 마진은 계속 줄어들어 왔습니다. 급기야 다국적 PC 제조사마저 합병을 거쳐 퇴출되거나 원가경쟁력이 있는 중국기업에 넘어가게 되었습니다. 물가가 8배 오르는 동안 오히려 가격을 내려 가며 팔아야 하는 제품을 만드는 기업과 물가상승율의 몇 배 이상으로 가격을 올려 온 비즈니스. 투자를 한다면 어떤 기업을 보유해야 할 지는 명확합니다.
다시 한 번, 가격결정능력
가격을 올릴 수 있는 비즈니스는 보석 같은 기업입니다. 자신만의 가격을 부과할 수 있는 기업은 오랜 시간 동안 그 어떤 환경의 변화도 무리 없이 헤쳐 나갈 수 있는 탁월한 기업입니다.
가격을 올려도 그 제품을 구입해야만 하는 기업은 어떤 특징을 가질까요?
가격결정능력을 가지려면 오직 그 기업만이 제공하는 독특한 가치가 있어야 합니다. 또는 독점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어야만 가격결정능력이란 특권을 가질 수 있습니다. 경제학적으로 얘기하자면 독점적경쟁시장이나 독점시장을 갖고 있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기업은 가격을 올릴 수 있는가, 우리 회사는 가격을 올릴 수 있는가라는 던져 보세요. 우리 제품 중 가격을 올릴 수 있는 제품은 무엇이 있는가 또는 있기는 한가라는 질문 그리고 내가 투자한 기업은 과연 가격을 올릴 수 있는 힘이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져 보는 것이 경영과 투자에 있어 중요합니다. 가격결정능력은 기업의 진정한 힘을 종합적으로 판단할 수 있는 가장 손쉽고도 확실한 판단 기준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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