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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토리와 테크널러지의 조화

2002-1-23

 

얼마 전 몬스터 주식회사를 보았습니다. 매년 겨울 방학이면 디즈니 애니메이션이 출시됩니다. 지금 디지틀 애니메이션은 디즈니와 픽사 애니메이션 스투디오가 한 편을 우리 나라 CJ(제일제당)도 출자를 한 회사인 스필버그의 드림웍스가 다른 한 편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매년 멋진 디지틀 애니메이션 영화를 내놓고 있는 두 회사의 경쟁을 지켜보는 것은 즐거운 일입니다. "개미" 대 "벅스 라이프", "슈렉" 대 "몬스터주식회사". 앞으로도 두 회사의 치열한 경쟁은 계속될 것입니다.

 

 

디즈니와 손을 잡은 픽사 애니메이션 스투디오는 애플 컴퓨터의 CEO인 스티브 잡스가 최고경영자로 있는 회사입니다. 픽사 애니메이션 스투디오는 존 래새터(John Lasseter)라는 인물이 실질적으로 이끌고 있습니다. 홈 페이지에 나오는 회사 역사를 간략하게 살펴 볼께요. 픽사는 1984 년, 디즈니에서 애니메이션 관련 일을 하던 존 래새터가 루카스 필름으로 옮겨서 디지틀 애니메이션을 만드는 일을 시작하면서 출발합니다. 다음 해 1985 년, 애플 컴퓨터에서 쫓겨난 뒤 방황하던 스티브 잡스는 루카스 필름의 컴퓨터 그래픽 부문을 천만 달러에 사들입니다. 이것이 이후 픽사 애니메이션 스투디오(Pixar Animation Studio)로 독립됩니다. 스티브 잡스는 최대주주이자 CEO가 되었구요. 그 뒤 단편부터 시작해서 차근차근 내실을 다져가다가 1995 년 영화 "Toy Story"로 일약 세계적인 명성을 얻습니다. 토이 스토리의 빅 히트 이후에는 우리가 잘 아는 대로 토이 스토리 2 편, 벅스 라이프(A bug's life) 등의 수작을 내놓으면서 입지를 더욱 굳건히 합니다.

 

2001 년 겨울 출시한 몬스터 주식회사(Monster Inc.)는 드림웍스가 내놓은 "슈렉"에 대한 대답과 같은 영화로, 픽사의 기술력을 다시 한 번 전세계에 유감없이 보여준 수작입니다.

 

기술 얘기가 나와서 말입니다만 드림웍스나 픽사 모두 리눅스 기반 플랫폼에 큰 관심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전통적으로 영화의 비주얼 이펙트 쪽에서 많이 사용된 플랫폼인 실리컨 그래픽스(SGI)가 너무 고가이기 때문입니다. 또 SGI 회사 자체의 미래가 상당히 불투명하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선택지는 크게 (인텔 PC + 마이크로소프트 NT) 아니면 유닉스 기반이 됩니다만 (물론 MacOS X 도 유닉스 기반 중 하나로 간주합니다), 업계에서는 마이크로소프트에 대해 대단히 냉담하다 합니다. 유닉스 기반으로 가는 경우 상용 유닉스를 택하거나 오픈소스 소프트웨어인 GNU 리눅스 기반으로 간다는 얘기인데, 전자 쪽이 월등한 이점이 없다면 모든 것이 공개되어 있고 비교하기 힘들 만큼 저렴한 비용으로 시스템을 꾸밀 수 있는 리눅스를 선택하는 건 당연하고 실제 리눅스를 채택한 회사들이 점차 늘어가고 있습니다. 드림웍스의 수작 "Shrek!"(슈렉)의 경우, 리눅스가 깔려 있는 1000 대의 인텔 피씨를 연결한 거대한 리눅스 클러스터 상에서 작업했다고 합니다.

역시 스토리다

50여 명 안팎의 회사로 시작했던 픽사가 550여 명의 직원을 둔 넷스케잎의 기록을 능가한 기업공개(IPO) 기록을 가진 회사로 성장하기까지는 회사의 핵심 인물이라고 할 수 있는 존 래세터의 공이 가장 컸습니다. 그리고 CEO를 맡고 있는 스티브 잡스의 역할도 작았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천만 달러에 사들인 픽사에 5천만 달러를 더 투자하면서 기업공개까지 이끌어 낸 사람은 스티브 잡스니까요.

 

Source: vanityfair.com, John Lesseter

 

훌륭한 기술력에 최고의 인력을 갖춘 픽사가 디즈니를 택했던 것은 디즈니의 전세계에 걸친 막강한 배급 능력과 브랜드의 힘을 빌기 위해서였습니다. 실제로 토이 스토리나 벅스 라이프가 디즈니 애니메이션인 것으로들 생각하고 있는 게 현실입니다. 픽사가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다 만들어낸 것인데도 말이죠.

 

예전에 비즈니스위크에서 읽은 기사에 따르면 스티브 잡스는 디즈니와의 관계를 뜨거운 감자처럼 생각하고 있다 합니다. 디즈니로서는 애니메이션의 제왕의 자리를 계속 유지하기 위해 최고의 디지틀 애니메이션 기술을 갖고 있다는 픽사와 손을 잡는 것이 필요했습니다. 픽사 역시 디즈니의 브랜드와 유통망이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픽사로서는 '디즈니가 디지틀 에니매이션 회사를 하나 만들어 버리지 않을까' 염려를 하지 않을 수 없고, 장기적으로는 두 회사가 한 판 대결을 벌일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갈 것이라는 예측이 많다고 합니다. 픽사와 디즈니의 제휴는 적과의 동침인 셈입니다. 

 

스티브 잡스가 인터뷰를 통해 밝힌 얘기 중에 상당히 관심을 끄는 부분이 있습니다. 잡스는, "중요한 것은 테크널러지가 아니고 스토리다"라는 얘기를 했습니다. 그는 컴퓨터 회사인 애플을 경영하고 있어서인지 다음과 같은 예를 들었습니다.

 

"컴퓨터나 여타 제품들은 10 년만 지나도 완전히 낡은 것이 됩니다. 하지만 우리는 여전히 아이들의 손을 잡고 디즈니의 백설공주 만화영화를 보러 가죠. 아이들은 백설공주를 보며 꿈을 키웁니다".

 

시대를 초월해서 살아남는 것은 바로 스토리라는 것입니다.

그런 측면에서 픽사의 작품들을 보면 역시 대단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토이 스토리나 A bug's life, 몬스터 주식회사 모두,깊숙한 감정을 건드리며 삶 자체에 대해서 생각해 볼 수 있는 부분이 많습니다. 토이 스토리 1 편 최고의 대사는 역시 우디가 버즈에게 외친,

 

"You are a T.O.Y!"

 

입니다. 그 장면은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느끼게 되는 초라함과 그것을 냉정하게 알려주는 환경을 생각하게 합니다. 그런 자각은 누구나 한 번 쯤은 겪어야 하는 성장통일 것입니다. 토이 스토리 2편에서 친구들을 버리고 안락한 일본 박물관 행을 택하느냐, 친구들과 함께 주인 Andy의 꿈을 키워주느냐를 두고 갈등하던 우디의 모습 역시 우리들이 매일 저울질하는 것과 하나 다를 것이 없습니다.

 

 

"몬스터 주식회사"에서도 그런 면이 두드러집니다. 아이들을 겁주기 위한 연습을 맹렬하게 하는 장면이라든지 으로 작업을 하러 들어가기 위해 의연하게 무리지으며 들어오는 괴물들의 모습. 그것은 영업 나가는 세일즈맨의 모습을 생각나게 합니다. 맹렬한 삶의 현장에 들어서서 한 판 멋들어지게 해야 하는 냉혹한 현실을 떠올리게 합니다.

 

이처럼 우리가 겪고 있는 우리 삶의 모습을 그대로 들여다 볼 수 있고 이런 부분이 유머러스하면서도 사실적으로 그려져 있기 때문에 픽사의 작품들은 성인에게도 진한 감동을 줍니다. 지금 생각해 봐도 "토이 스토리"에서 봤던 현란한 표정 처리나 "몬스터 주식회사"에서 컴퓨터 그래픽 기술 때문에 화제를 모았던 썰리의 정교한 털 움직임은 별로 생각이 안 나지만, 영화 속의 우정이나 애틋한 느낌은 여전히 기분좋게 가슴에 차오르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테크널러지는 스토리를 전달하기 위한 하나의 방편일 뿐 스토리가 가장 중요하고 또 사람들의 추억 속에 깊게 새겨집니다. 토이 스토리의 3D 그래픽 기술에만 관심을 가지며 우리도 어떻게 해야 한다는 얘기만을 되풀이 하는 것은 참으로 공허할 수밖에 없습니다. 스토리를 그처럼 밀도있고 흡인력 있게 구성하려는 고민이나 상황마다 기발한 상상력으로 느낌의 차원을 넓혀 줄려는 시도는 과연 얼마나 하고 있는지가 더 중요할 것입니다.

칸트식으로 얘기하자면,

 

"테크널러지 없는 스토리는 공허하고 스토리 없는 테크널러지는 맹목이다"

 

얘기가 멀리 가버릴 수도 있겠지만 스토리를 그처럼 구성해나갈 수 있는 데는 인문학적 배경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픽사가 애니메이션이나 경영학과 큰 관계가 없는 심리학 전공자나 사회학 전공자들에게 문호를 열어 두고 채용을 하는 것도 그런 이유일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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