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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펜터즈(Carpenters)라는, 우리 나라에서도 "Yesterday once more" 같은 곡이 오래 사랑 받고 있는 그룹이 있는데요. 그 카펜터즈가 특유의 솜 이불처럼 편안한 음색으로 리메이크 했던 곡, "Calling occupants of interplanetary craft"의 오리지널이 바로 캐나다 프로그레시브 락 밴드 클라투(Klaatu)의 데뷔 앨범 첫 곡입니다. 카펜터즈라는 이지 리스닝 계열의 대표적인 아티스트도 리메이크한 곡을 만들어 냈을 정도로 대중성 짙고 아름다운 선율을 선보였던 팀이 바로 클라투였죠.

클라투는 비틀즈 멤버가 만든 밴드다?

1976년 클라투의 데뷔 앨범이 처음 세상에 그 면모를 드러냈을때, 앨범에 멤버 소개도 전혀 없고 프로듀서 이름 등도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그런 미스테리한 음반이었는데 지극히 비틀즈 같은 음악으로 앨범 전체가 채워져 있었구요. 그러다가 Providence Journal이라는 일간지에 스티브 스미쓰라는 컬럼리스트가 이 음반은 비틀즈 멤버들이 몰래 모여 만들어 낸 것일 가능성이 높다라는 주장을 하고 앨범을 들어본 사람들은 그 얘기를 믿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비틀즈만이 만들어 낼 수 있을 것 같은 우아하면서도 깊게 기억되는 멜로디와 존 레넌과 폴 매카트니를 생각하게 하는 싱어의 음색과 코러스, 거기에 비틀즈 풍의 싸이키델릭한 분위기까지. 누가 들어도 비틀즈 멤버가 만든 음악처럼 느낄 수 있었거든요.

 

Steve Smith의 컬럼 (Source: ledgernote.com)

 

스투디오 세션 뮤지션으로 구성된 무명 밴드의 실험적인 데뷔 앨범이 의외의 소문에 힘 입어 많이 팔려 나가는 것을 본 캐피틀(Capitol) 레코드에서도 그런 풍문을 은근히 즐기며 이를 확대 재생산하게 됩니다. 소문이 부풀려져 나간 것에는 몇 가지 계기도 있었는데, 데뷔 앨범 재킷에 그려진 커다란 태양이 비틀즈 곡 "Heare comes the Sun"을 연상시키는 것 같다는 점, 그리고 하필 그 음반이 비틀즈가 소속된 캐피틀 레코드 사에서 앨범이 나왔다는 점도 소문을 키우게 되구요. 밴드 이름 클라투는 영화 "지구가 멈추는 날(The day the earth stood still)"의 에일리언 이름에서 따온 것인데요. 데뷔 앨범 발매와 비슷한 시기에 비틀즈의 링고 스타 솔로 앨범이 나오고, 그 표지에 링고 스타가 외계인 클라투처럼 그려져 있다는 점도 소문에 힘을 더하게 되지요. 밴드 멤버들도 특별한 언급 없이 비틀즈 멤버가 만든 팀으로 오해된 채 상당 기간 활동했고 그런 현상을 재미있는 심경으로 지켜보았다고 합니다.

 

Source: ledgernote.com

 

이 대목에서 클라투의 음악성이 얼마나 뛰어났는지 짐작해 볼 수 있는데, 멤버 소개 없이 음반 하나를 툭 내 놨는데 이거 혹시 비틀즈가 만든 것 아닐까라는 얘기가 퍼져 나갔다는 사실 자체가 이를 증명합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비틀즈를 비슷하게 카피하는 밴드들은 전세계에 많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클라투는 분명히 비틀즈 분위기가 있기는 한데 비틀즈의 새 앨범처럼 동시대의 느낌을 동시대의 감각으로 연주한 새로운 곡들로 앨범을 채워냈기 때문에 비틀즈 루머까지 나게 된 것입니다.

 

클라투는 몇 장의 앨범을 냈습니다만 여기서는 대표작으로 일컬어지는 데뷔 앨범과 두 번째 앨범 "Hope" 위주로 얘기 해볼까 합니다. 그 뒤 나온 음반은 사실상 거의 일반 팝 음악이고(레코드 사의 압력에 때문이라고는 합니다만.) 데뷔 앨범과 두 번째 앨범에서 보여 준 놀라운 역량에 비춰볼 때 너무한다 싶을 정도로 상업적이고 평이한 음악들이었습니다.

데뷔 앨범 "3:47 EST"

클라투 최고 작품으로 꼽히는 앨범입니다. 재킷 커버 아트가 흥미롭습니다. 프로그레시브 락 앨범은 이렇게 앨범 커버 아트를 하나의 미술 작품처럼 구성하는 경우가 많고 그게 또 매력이기도 합니다.

 

3:47 EST, 클라투 데뷔 앨범

 

그림을 보면 커다란 태양이 알 듯 모를 듯 오묘한 미소를 띠고 있고 그 밑엔 버섯 몇 개, 그 위로 호랑나비 한마리, 그리고 생쥐. 그런데 자세히 보면 햇님 얼굴 하방에 지면으로 연결된 줄기가 있습니다. 태양이 아니고 해바라기였군요. 태양이든 해바라기든 'Sun'을 연상시키는 이 그림 때문에 위에서 말한 것처럼 클라투가 비틀즈 멤버들이 모인 팀이라는 소문이 더욱 확산되었습니다. Beatles의 명반 Abbey Road에 실린 "Here comes the Sun", "Sun King"과 관계 있는 것 같다는 이유로요. 그리고 이 앨범의 재킷 덕분에 클라투의 데뷔 앨범은 쥬노 어워드(Juno Award) 앨범 아트웍 부문에 노미네이트되기도 합니다.

 

데뷔 앨범은 프로그레시브 락을 다소 팝락적으로 해석한 앨범입니다. 그만큼 누구나 아무 부담없이 쉽게 친숙해질 수 있는 음반입니다. 대중적으로도 상당한 인기를 모았던 곡 "Sub-rosa subway"는 싱글 컷 되기도 했고 빌보드 핫 100 챠트에 62위까지 오르기도 합니다. 이 곡은 뉴욕 지하철의 전신을 만들어 낸 전설적 발명가인 알프레드 비치(Alfred Beach) 이야기를 다룬 곡입니다. 곡 후반부의 좌우 스피커를 교대로 울리며 횡보하는 지하철 소리는 그래서 실린 것입니다. 알프레드 비치 씨는 전기가 보편화되기 이전 시대 사람이었기 때문에 공기를 이용한 동력으로 지하철을 움직일 계획이었다 합니다. 가사 중 "wind-machine"은 그래서 나온 말입니다. 가사를 한 번 볼까요?

 

SUB-ROSA SUBWAY
(John Woloschuk / Dino Tome)
Back in 1870 just beneath the Great White Way
Alfred Beach worked secretly
Risking all to ride a dream
His wind-machine
His wind-machine

New York City and the morning sun
Were awoken by the strangest sound
Reportedly as far as Washington
The tremors shook the earth as Alfie
Blew underground
Blew underground
He blew underground, yeah

Ahh
All aboard sub-rosa subway
Had you wondered who's been digging under Broadway?
It's Alfred
It's Alfred
It's Alfred
Poor Al, woh no Al

As for America's first subway
The public scoffed, "It's far too rude"
One station filled with Victoria's age
From frescoed walls and goldfish fountains....
To Brahmsian tunes

 

워싱턴까지 쩌렁쩌렁 울릴 정도로 땅 속을 파고 들어간 알프레드 비치. 지하철 승객에게 누가 브로드웨이 밑바닥을 뚫었을까 궁금하지 않느냐며 묻는 클라투는 정답을 알려 줍니다.

 

 

이 곡외에도 데뷔 앨범은 비틀즈 중후반기 음반처럼 한곡 한곡이 참 아름다운 선율을 담고 있으면서도 음악적 컬러가 다른 다양한 곡으로 채워져 있는데요. 첫 곡 "Calling occupants of interplanetory craft"는 위에서 얘기한 것처럼 카펜터즈가 리메이크 했을 정도로 멜로디가 아름다운 곡으로 도입부의 풀 벌레 소리와 풀밭 소리가 독특합니다. 보컬리스트의 환상적인 음색이 멜로트론 싸운드와 최상의 조화를 이루는 곡입니다.

 

두번째 곡, "California Jam"은 써프 뮤직을 연상시키는 분위기에 라이브처럼 청중의 환호성을 섞어 놓은 것도 재밌습니다. "True life hero"는 강력한 하드락 사운드로 놀라게 하는 곡이구요. 뒤이어 나온 "Doctor Marvello"는 전형적인 비틀즈 풍의 곡입니다. 이 곡을 들으면서 비틀즈를 떠올리지 않기란 힘듭니다. 끝 곡 "Little Neutrino"는 제목에서 벌써 진보적인 느낌을 줍니다. 뉴트리노, 중성미자. 사운드 역시 프로그레시브 락 그 자체로, 보코더를 이용한 기계적 음성이 신비로운 분위기를 극대화합니다. 클라투는 소립자를 너머 아예 외계인과 태양계 여행을 하는 것을 얘기하기도 합니다. 세번째 곡, "Anus of Uranus"(같이 여행하는 친구 이름이 '천왕성의 항문')에서는 금성에서 카드놀이를 하고 화성에서 일광욕을 하는 얘기를 들려줍니다.

 

비틀즈가 깊이 있으면서도 쉽게 친숙해 질 수 있는 곡을 쏟아 냈던 것처럼 클라투의 데뷔 앨범은 진보적이면서도 심각하지 않은 아름다운 곡들이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클라투 사운드가 당시에도 얼마나 특이하면서 멋있게 느껴졌는지, 하루는 롤링 스톤즈(Rolling Stones)의 믹 재거가 클라투 작업실로 찾아왔다고 합니다. 믹 재거(Mick Jaggar)가 작업실에 갑자기 들어오니까 멤버들은 당황해 했구요. 아니... 저 사람이 여길 어떻게? 믹 재거는 한참 작업하는 것을 보다가 횡 하니 가버렸다고...

 

데뷔 앨범에 실린 곡은 하나도 빼 놓을 것이 없는 명곡들입니다. 

 

 

 

두번째 앨범, "Hope"

"Hope"는 전작의 팝락적인 느낌에서 벗어나, 클라투 음반 중 가장 프로그래시브 락적인 면모를 보여준 클래식에 바탕을 둔 음반입니다. 곳곳에 관현악 연주를 넣기도 하고 특히 "The loneliest of creatures"는 아름다운 합창과 챔벌로 소리로 고전음악을 듣는 듯한 착각마저 불러일으킵니다.

 

 

"Mad Man"에서 보여지는 파괴적인 실험 정신이나 "Around the universe in eighty days"(80일 간의 우주 일주)에서 느낄 수 있는 우주 여행의 느낌도 신비롭습니다. 마지막 곡인 "Hope"도 멋진 가사로 인기를 모았구요. "Hope"의 가사를 한 번 볼까요?

 

When faith gives way to fear
When motivation disappears
All is lost if one abandons hope
All is lost if one abandons hope

 

믿음이 두려움에게 굴복하고

동기마저 사라질 때

희망까지 포기하면 모든 것을 잃는 것입니다.

 

아트 락과 프로그래시브 락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클라투의 "Hope" 앨범을 명반으로 손꼽습니다. SP 레코드의 판 튀는 소리를 섞어 놓는다든지 보코더의 능수능란한 사용 클래식적인 악기 편성 등 강한 실험성은 요즘 들어도 여전히 신선합니다. 사운드 이펙트를 단지 색다르게 들리게 하려고 넣은 것이 아니라 곡에 맞게 깊게 녹여냈다는 점이 클라투의 비범함입니다. 국내에서는 데뷔 앨범과 두 번째 앨범이 하나의 CD에 모아진 형태로 발매된 것이 나와 있습니다.

이 앨범 외에도 국내에서 사랑 받은 음반으로는 "Magentalane"이 있습니다. 비틀즈의 존 레넌을 추모한 곡이라는 "December dream"의 서늘한 겨울 아침 분위기와 애잔한 바이얼린도 좋고 "Maybe I'll move to mars"에서 느껴볼 수 있는 전성기의 마지막 자취도 좋습니다. 아트 락적인 느낌과 팝적인 느낌이 어정쩡하게 섞인 음반이기 때문인지 듣는 곡만 계속 듣게 되는 음반입니다.

 

현재는 멤버 셋 모두 직접 연주 하는 것과는 상관없는 일을 하고 있다 합니다.
한 명은 지붕 공사와 관계되는 사업을 하고 계시고, 한 명은 프로듀서와 엔지니어링 쪽으로 일을 하고 있고, 다른 한 분은 엔터테인먼트 쪽을 전문으로 하는 회계사로 돌아갔다고 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전세계에 클라투의 신비로운 음악을 아끼는 많은 팬이 있고, 클라투와 클라투 음악 뒤에 숨겨진 재미있는 수수께끼들을 찾으며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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