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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수의 불규칙적인 연결이 큰 변화를 일으킨다

2001-3-15

스몰 월드 효과 (Small World Effect)

임의로 선택한 두 사람도 여섯 다리만 건너면 서로 연관이 된다는 얘기가 있습니다.

그냥 통설이 아니고, 과학적으로 밝혀졌습니다. 이것을 "six degrees of separation"이라 합니다.

"Six degrees of separation"은 다음과 같은 내용입니다.

 

때는 1967년.
하버드 대학 심리학 교수인 스탠리 밀그램(Stanley Milgram)은 네브래스카주의 오마하에 사는 사람을 임의로 추출해서 160통의 편지를 띄웁니다. 그 편지를 최종적으로 받아야 할 사람은 보스톤에 사는 한 증권 브로커였고 이렇게 적혀 있었습니다.

 

"이 편지는 보스톤 xxx에 사는 증권 브로커에게 전달되어야 할 편지입니다. 이 증권 브로커의 이름을 참조해서, 귀하가 알고 계시는 분 중 가장 이 사람에 근접하다고 생각되는 사람에게 발송해 주시기 바랍니다."

 

편지는 보스톤의 그 증권 브로커를 향해 매번 아는 사람에서 아는 사람으로 방식으로 전달되어 갔습니다.
최종적으로 그 보스톤 증권 브로커를 아는 사람이 마지막으로 그 편지를 전달하게 된 것입니다.

160 통의 편지중에 최종적으로 증권 브로커에게 전달되는데 성공한 편지는 42 통이었습니다.
놀랍게도 전달된 편지가 몇 사람을 거쳐서 도착했는지를 조사해 보니 평균 5.5 명에 불과했습니다.

네브라스카에서 보스톤까지.

딱 5.5명만에 도착!

 

이것을 "Six degrees of separation"이라 합니다.
정말 세상이 좁다는 것을 최초로 실증한 실험이었습니다. [1]

 

 

Source: New York Times, Stanley Milgram

 

 

케빈 베이컨이라는 헐리웃 배우가 있습니다.
아무 헐리웃 배우나 한 명 임의로 지목했을 때 그 배우가 케빈 베이컨과 같은 영화에 출현했다면 0 점, 그 배우가 케빈 베이컨과 함께 영화를 찍은 다른 배우와 같이 영화를 찍은 적이 있다면 1 점, 이런 식으로 하면 놀랍게도 어떤 배우를 지목하더라도 케빈 베이컨과 4 점 이내에 관계가 됩니다. 심지어 시대적으로 한참 떨어져 있는 챨리 채플린도 3점에 불과합니다. 정말 신기하지 않습니까? 왜 이런 일이 생길까요? 

바로 이것이 스몰 월드 효과(small-world effect)입니다.

 

스몰 월드 효과는 코넬 대학의 Duncan Watts, Steven Strogatz라는 두 명의 학자가 "Nature"지에 기고한 논문을 통해서 최초로 알려집니다. 이 효과는 위에서 말한 케빈 베이컨 넘버같은 것을 설명해 주며 굉장한 반향을 불러 일으킵니다.

스몰 월드 효과 논문에는 복잡한 수학식으로 자세히 설명이 되어 있는데요, 그 논문의 결론만 얘기하면 이렇습니다.

 

모든 네트웍은 그 연결 방식에 따라 크게 세 가지로 나눠질 수 있습니다.
일정한 규칙에 따라 인접한 곳과 일정한 숫자로만 링크되는 'regular network'이 있고

무작위로 서로 연결되어 있는 'random network'이 있습니다.

이 둘의 중간쯤에 있는, 즉 구성원의 일부만이 전혀 엉뚱한 곳으로 연결되어 있는 네트웍을 'small-world network'이라고 합니다.

 

만약 어떤 집단에 감기 걸린 사람이 한 명 나타났을 때, 모든 사람이 주변 몇 사람만 일정한 숫자로 연결되어 있는 경우보다 각 구성원이 무작위로 여기 저기 연결되어 있는 경우 감기 전파 속도가 빠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엉뚱한 곳으로 연결된 구성원이 딱 몇 사람만 있는 경우에도 감기가 급속하게 퍼지는 것이 관찰되었습니다.

이것이 스몰 월드 효과입니다.

 

이처럼 네트웍 자체가 굉장히 방대함에도 불구하고, 엉뚱한 곳으로 링크되어 있는 소수의 멤버 때문에 네트웍 전체가 서로 서로 매우 밀접한 관계에 놓인 것처럼 되는 것을 스몰 월드 효과라고 합니다.

문자 그대로 '좁은 세상' 효과입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논문에 있는 그래프를 봅시다.

 

 

위 그림에서 p는 어떤 네트웍이 무작위로 링크될 확률을 나타냅니다.

p=0인 경우는 레귤라 네트웍, p=1인 경우는 랜덤 네트웍입니다.

그리고, "clustering"과 "path length"라는 개념이 있습니다.
클러스터링은 '얼마나 덩어리 지을 수 있는가'를 뜻합니다. a가 b를 알고, b가 c를 아는데 a도 c를 안다면 클러스터링 정도가 큽니다. 패쓰 길이는 한 꼭지점에서 다른 꼭지점까지 가는데 몇 단계를 거치는가입니다.

 

레귤라 네트웍처럼 링크가 일정 숫자에 일정 패턴으로만 이루지는 경우는 한 덩어리로 묶을 수 있는 부분이 많아집니다. 클러스터링 정도가 커집니다. 하지만 한 꼭지점에서 다른 꼭지점으로 가는것은 항상 일정한 간격을 거쳐가야 하기 때문에 패쓰 길이는 길어집니다. 랜덤 네트웍의 경우에는 클러스터링 정도가 작습니다. 무작위로 얽혀있기 때문에 일정하게 그룹 짓기 힘듭니다. 그러나 패쓰 길이는 매우 줄어듭니다. 한 꼭지점에서 다른 꼭지점으로 건너갈 경우의 수가 많아지기 때문입니다.

 

스몰 월드 효과는 클러스터링이 큰, 각기 덩어리 지워지는 정도가 큰 네트웍에서도 몇 개의 특이한 링크가 존재하는 경우 임의의 두 지점 간의 패쓰 길이가 훨씬 단축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와 같은 스몰 월드 효과는 여러 현상을 아주 매력적으로 설명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 신체의 신경망이 망가져서 뇌가 동작을 멈추는 것이 꼭 모든 뇌세포가 다 문제가 생겨서 그런 것이 아니고 한 두개의 이상한 연결을 가진 셀이 파괴를 순식간에 넓은 범위로 퍼뜨릴 수 있다는 것 등이 스몰 월드 효과로 설명됩니다.

 

 

 

검색 엔진과 바이어럴 마케팅(Viral Marketing)

이른바 바이어럴 마케팅이 왜 효과적인가는 스몰 월드 효과를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굳이 모든 사람들이 서로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지 않더라도 네트웍 내의 어떤 한 두 멤버가 (보통 1%만 있어도 스몰-월드 효과가 나타난다고 합니다) 초창기 GMAIL 같은 이메일 서비스를 순식간에 여기저기 퍼뜨리면서, 또 그렇게 감염된 집단 내의 또 다른 한 두 명이  다른 집단으로 퍼뜨리는 식으로 급속한 확산이 이뤄집니다.

 

검색엔진도 스몰 월드 효과와 관계가 있습니다. 월드와이드웹이 사실상 스몰 월드 네트웍에 속하기 때문에, 즉 각 문서들이 서로 서로 잘 연결된 것은 아니지만 매개하는 소수에 의해 몇 다리 안 건너 찾아낼 수 있는 상태에 있기 때문에 굳이 정교한 검색엔진을 쓰지 않더라도 원하는 문서에 어렵지 않게 도달할 수 있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이것을 증명해 놓은 제록스 PARC 연구원 논문이 있는데 내용을 잠깐 소개합니다. 어떤 주제를 검색할 때 센터격인 싸이트가 있는데 이 센터 싸이트를 찾지 못하더라도 관련 싸이트 대부분이 중심 싸이트를 링크하고 있기 때문에  몇 단계 내에서 원하는 문서를 찾아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 때 센터에 해당하는 대형 싸이트는 몇 개만 나타나게 된다는 것을 Power-law 분포를 이용해 설명하고 있구요. 또 상호 링크 정도를 통해서 그 커뮤니티의 결속 정도도 알 수 있습니다. 여기서 커뮤니티는 일반적으로 생각하는 그런 커뮤니티는 아니구요, 구글이나 네이버, 다음 같은 검색엔진에서  검색어를 쳤을 때 나오는 결과 페이지에 실린 모든 링크는 그 검색어를 중심으로 구성된 하나의 커뮤니티 라는 의미입니다.

 

검색 엔진에서 낙태 찬성(abortion pro-choice)하는 쪽과 반대(abortion pro-life) 쪽을 각각 검색해 보면 "pro-choice" 쪽은 각 싸이트들끼리 링크가 많지 않습니다. 역으로 "pro-life" 쪽은 서로 긴밀하게 링크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낙태에 반대하는 쪽이 보다 더 결속력이 강한 커뮤니티를 이루고 있다는 것을 추정해 볼 수 있습니다. 광고를 한다면 위와 같이 간접적인 방식으로 커뮤니티의 결속력을 확인해 봐서 가급적 결속력이 좋은 커뮤니티를 택하는 것이 더 유리합니다.

 

알고 보면 우리는 좁은 세상에 살고 있습니다.

 

 

 

[1] 한편, 스탠리 밀그램 교수의 '좁은 세상' 효과에 대한 반박이 최근들어 발표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반박 중 하나인 앨러스카 패어뱅스 대학 심리학과의 클라인펠드 교수의 주장은 이렇습니다.

첫째, 밀그램 교수의 그 실험 자체가 많은 편향성을 갖고 있다는 것입니다. 밀그램은, 처음 우편물을 발송하는 네브라스카주의 사람들을 선택할 때 블루칩 주식을 다수 보유한 재산이 많은 사람들을 위주로 택했다 합니다. 이는 곧 보스톤에 사는 증권 브로커와 아무래도 어떤 연결이 있을 가능성을 높여줍니다. 게다가, 그렇지 않은 경우에도 무작위 선택이 아닌 '인맥이 풍부한 분을 구합니다'라는 신문광고를 통해서 자원자 선발이 이뤄졌고 일부는 메일링 리스트를 통해 구입한 주소와 이름을 사용했다고 합니다. 따라서 이후 많이 쏟아져 나온 무작위 선택을 이용한 유사한 좁은 세상 효과 실증 연구가 대개 매우 낮은 도착 성공률 및 훨씬 더 큰 단계로 끝난 것은 밀그램 교수의 오리지널 연구가 많은 편향성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는 주장입니다.

클라인펠드 교수는 한 발 더 나아가서, 우리의 연결이 인종이나 富의 장벽에 가려져 있다는 것이 후속 실험이나 자신의 추가적인 연구에서 드러났다고 얘기합니다. 똑같은 실험을 하더라도 최종 수령인이 백인인 경우와 흑인인 경우에 있어 성공률이 몇 배 이상 차이가 나고, 특징적으로 수입이 높은 사람은 다양하고 풍부한 연결을 갖고 있음에 반해 수입이 낮은 사람은 네트웍에서 소외가 되어 있다고 합니다. 사회적으로 성공하고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사람일수록 더 많은 연결을 소유하고 있는 것이지 무작위로 선택할때 몇 단계만 건너면 만난다는 신화는 허구라는 것이지요. 저소득자 -> 고소득자로의 연결은 있는지 몰라도 고소득자->저소득자로의 연결은 훨씬 더 취약하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후속 연구들을 살펴 보면, 한 도시 내부나 동일 빌딩에서 이뤄진 연구는 많지만 두 도시 이상을 포함하는 연구는 거의 없다라는 것 역시 밀그램 교수 주장의 설득력을 떨어뜨리고 있습니다. 밀그램의 오리지널 연구 자체가 하나의 예외적인 것은 아니냐는 지적입니다. 오히려 교수는, 사람들이 좁은 세상 효과를 아주 쉽게 믿는 것 자체에 어떤 심리적인 이유가 있지 않느냐고 합니다. 좁은 세상을 믿게 되면 그만큼 세상을 따뜻한 곳으로 인식하게 되고, 또 우연히 옛날 친구를 만나게 되면 그 인상이 깊게 오래 간다는 점 등이 사람들로 하여금 '6단계만 건너면 다 아는 사이'라는 신화를 믿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무엇이 진실일까요?
어쨌든 생각한 것보다 훨씬 세상이 좁다는 사실은 부인하기 힘듭니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비슷한 실험을 하면 놀라운 결과가 나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인종적 장벽도 없고, 연을 유난히 중시하는 우리나라는 확실히 좁은 세상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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