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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80년대 라디오와 팝 음악 추억

이명헌 2020. 7. 4. 21:55

80년대 라디오 팝 프로그램들 그리고 80년대 정서

2000-4-23

 

20년쯤 흐르고 나면 '추억의 팝스' 프로그램에서 힙합 뮤직이 흘러나오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음악이 주는 좋은 점 하나는 그 음악을 즐겨 듣던 그 때로 순식간에 우릴 데려다 준다는 면인 듯합니다. 80년대 초중반. 마돈나와 프린스, 마이클 잭슨, 스타쉽, 스티비 원더가 흘러나오던 라디오를 들으며 그리고 친구와 좋아하는 음악 얘기를 나누며 자율 학습 시간을 보내던 그 시절이 그립습니다. 이 글을 통해 잊고 지내던 이름들을 오랫만에 생각해 보면서 아련한 중고등학교 시절로 잠시나마 시간여행을 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

 

우리 귀에 친숙한 이름들만 해도 무척 많기 때문에 여기서 80년대 뮤지션을 대략이나마 얘기하기는 것은 불가능하구요. 당시 인기를 끌었던 라디오 팝 프로그램 이야기와 함께 그 때 분위기를 전하는 정도로 몇 자 적어보겠습니다.

 

80년대 라디오 팝 프로그램들

처음 팝송을 듣게 된 게 아마도 1984년쯤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어느 반에나 한두 녀석씩 있는 팝을 듣는 친구를 보면서 도대체 저 친구는 왜 저런 음악을 들을까 궁금해 하며 한 번 들어보게 된 라디오 팝송 프로그램.

그렇게 시작했던 것이 평생의 취미가 될 줄은 몰랐습니다.

 

"황인용의 영팝스"를 아시죠.

평범한 외모를 장점으로 내세우며 아나운서가 되었다는 황인용 씨가 저녁에 진행하던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척 맨지온의 리듬감 넘치는 곡, "Give it all you got"으로 문을 열던 황인용의 영팝스에서는 매주 인기 팝 스무 곡을 애청자 엽서를 중심으로 선별해서 방송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자기가 좋아하는 아티스트의 순위가 올라가느냐 내려가느냐에 목숨 걸었고, 황인용의 영팝스 시간에 나온 노래를 녹음한 테입을 돌려가며 듣기도 했습니다. 그 때 그 프로그램을 통해 우리나라에서만 특이하게 히트했던 노래가 몇 개 생각나는 군요. "제랄드 졸링"(Jerald Jolling; 헤랄트 욜링)의 "Tickets to the tropics"나 밥시거 앤 실버불릿 밴드(Bob Seger and Silver Bullet Band)의 "Like a rock" 같은 곡이 그랬습니다. 밥시거 곡은 챠트 순위가 별로 올라가지 않자, "이렇게 좋은 노래가 왜 순위가 안 올라갈까요?" 라며 적극적으로(?) 개입하던 것도 생각나고요, 무디 블루스(Moody Blues)의 "Your wildest dream"이 인기를 모을 때는 도입부의 씬써싸이져 연주를 '제 생각에는 이부분은 사족 같습니다만...'이라고 했던 것도 생각납니다. 당시 인기를 모은 곡에는 오키스트럴 메뉴버스 인더 닥, 줄여서 O.M.D(Orchestral Maneuvers in the Dark)의 "If you leave"라는 곡도 있었습니다. 

재밌는 사실 한 가지, 영팝스에서 여행기를 소개하던 분이  나중에 KBS 굿모닝팝스라는 영어 공부 프로그램으로 전국적 히트를 기록했던 오성식 씨였습니다.

 

"황인용의 영팝스"가 KBS에 있었다면 MBC에는 "박원웅과 함께"가 있었습니다.

신비로운 시그널 음악이 지금도 머리 속을 맴돕니다. 박원웅씨는 음성으로 봐서는 클래식 음악 프로그램을 진행하면 더 어울릴 것 같은 부드러운 목소리를 갖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2시의 데이트. 최근까지도 MBC FM DJ로 활동하고 있는 김기덕 씨가 "헤헤헤" 하면서 진행하던 라디오 프로그램입니다. "두시의 데이트"는 미국 빌보드 챠트 상위권 곡을 모아서 방송해 주기도 하고 일요일에는 "팝 개그 드라마"라는 것을 만들어서 우리를 즐겁게 해주었습니다.

 

팝 개그 드라마 얘기를 하니 박세민 씨라는 코메디언이 생각납니다. 신디로퍼의 "She Bop"을 패러디해서 "쉰밥-아이밥-어른밥.." 하면서 웃겨준, "냉장고를 녹이는 뜨거운 남자.. 박세민이라고...... 해요~"로 알려진 코미디언입니다. 코 밑의 점이 마돈나의 점과 위치가 비슷하다는 것에 자부심을 갖고 있던 재미있는 분이었습니다.

 

"두시의 데이트"는 이제는 가요 위주의 프로그램이 되었지만 그 때만 해도 가요는 거의 들어볼 일이 없는 전형적인 팝 프로그램이었습니다. 같은 방송 시간대에 KBS에서는 "김광한의 팝스다이알"이 있었는데 이 두 프로그램은 서로 선의의 경쟁을 하면서 좋은 음악을 많이 소개해줬습니다. 김광한 씨는 나중에 kbs의 "쇼비디오쟈키"라는 코미디 프로그램의 진행자도 맡게 되었고요. 

 

두시의 데이트 시그널 음악은 영화 "엠마누엘 부인"의 주제가였습니다. 20년 넘게 여전히 두시의 데이트를 상징하는 음악으로 남아있습니다. 편곡만 바뀌었을 뿐 그 때나 지금이나 똑같은 음악입니다. 그 때는 드럼 소리로 시작한 다음, 김기덕 씨가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 두시의 데이트 김기덕입니다~"라며 다소 호들갑스럽게 오프닝을 했었습니다. 컴팩트 디스크가 막 소개되었을 때는 '두시의 데이트에서는 잡음 없는 최첨단 컴팩트 디스크로 음악을 들려드립니다'라는 얘기와 함께 "Joy"의 "Touch by touch", "모던 토킹"(Modern Talking)의 "You're my heart, you're my soul" 등 댄스뮤직 특집을 하기도 했습니다. 조이 얘기가 나와서 말인데 이 보이밴드는 "Korean girls"라는 곡으로 인기를 모으기도 했습니다.. 곡 시작 부분에 "안뇽하세요, 한쿡 아카씨들"라고 서투른 우리말을 했다는 것 때문에 화제가 되었습니다. 그 때는 팝 가수가 우리 말을 노래에 넣었다는 것 자체가 굉장한 일이었습니다. 그런데 조이의 그 곡이 사실은 "Japanese girls"를 원곡으로 "girls" 앞 단어만 바꿨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엄청나게 비난을 받기도 했지요.

 

배철수 씨는 그 때까지만 해도 송골매라는 굴지의 록밴드에서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고 있었습니다. 그보다 더 이전에는 심지어 영화배우를 하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DJ가 내 천직이라는 얘기를 하고 있는 분이지만 송골매 시절이 워낙 인상 깊었고 또 오랫동안 활동했었기 때문인지 여전히 나이 좀 있는 분들은 배철수하면 송골매를 먼저 떠올리는 분도 많을 겁니다.

 

90년대 초반부터 서서히 가요 붐이 불기 시작하고 팝음악은 일부만 듣는 음악으로 점차 사양화되어 갑니다. 80년대 라디오 프로그램의 대부분을 차지하던 팝 음악 방송들은 하나 둘 자취를 감추고, 얼마 뒤 두 시간대의 메이져 프로그램 중에는 "배철수의 음악캠프"만 남게 됩니다. 배철수씨가 요즘 가끔, '어떻게 하다보니 나만 남아있게 되었고 그것이 행운으로 작용해서 대표적인 팝 프로그램으로 자리를 굳힐 수 있었다'는 얘기를 하는데, 운이 좋아서만은 아니지만 바깥 상황이 그렇게 돌아갔던 것은 분명합니다. 여기서 잠시 80년대 아티스트 이름을 조금 얘기해보고 갈까요.

 

위에서 조이나 모던 토킹을 얘기했지만 사실, 80년대 최고의 팝 스타는 누가 뭐래도 마이클 잭슨이었습니다. 당시 마이클 잭슨의 문워크를 잘 따라하는 아이들이 학교마다 몇 명씩 있었고 이 친구들은 소풍 때 스타가 되었습니다. '브레이크 댄스' 배우기 열풍이 불어서 잘 꺾이지도 않는 팔 관절을 꺽어가며 연습하기도 했고, '로버트 춤'이란 것이 유행하기도 했습니다. 마이클 잭슨의 "Thriller" 앨범은 우리 나라로 치면 서태지 현상과 같이 거대한 변화를 몰고 왔었습니다. 듣는 음악에서 보는 음악으로의 전환이 본격적으로 시작되어서 뮤직 비디오와 MTV가 화제의 중심이 되었죠.

 

 


마이클 잭슨의 뒤를 이어 떠오른 스타는 프린스(Prince)였습니다. 80년대판 지미 핸드릭스가 등장했다는 얘기가 나올 만큼 파격적이고 멋진 음악과 기타 연주, 스테이지를 보여줬던 아티스트였습니다. 그는 무대 위에서 음란한 퍼포먼스를 하다가 문제를 일으키기도 했습니다. 극단적으로 여자를 성적 대상화한 뮤직 비디오를 만들어 내는 등 많은 비난과 관심을 모았습니다. 프린스는 곡이 워낙 끈적끈적한 데다가 양 다리 사이에 기타를 끼운 채로 기묘한 자세를 연출하는 등의 음란한 면모로 비난을 사기도 했습니다.

 

 

 

 

프린스는 늘 따라다니던 천재라는 단어처럼 앨범마다 독특한 곡과 연주를 보여주던 아티스트입니다. 

앨범마다 독창적인 컬러를 보여주며 다양한 음악적 실험으로 표현의 영역을 넓혀 왔고 동시에 대중적 인기도 놓치지 않았던 뛰어난 음악인이었구요. 대표곡이랄 수 있는 "Purple rain"은 나중에 에릭 클랩튼이 재해석하며 연주하기도 했던 곡입니다. 에릭 클랩튼이라는 대가가 2016년 유명을 달리한 프린스의 곡을 연주하며 헌정하는 무대를 보여줬다는 것에서 보 듯, 연주자로서, 또 작곡가로서, 앨범 프로듀서로서 프린스의 존재감과 천재성은 의심할 여지가 없었습니다. 

 

빌보드에서는 큰 빛을 보지 못했지만 우리나라에서 굉장한 인기를 모았던 곡 중에 "Murray Head"의 "One night in Bangkok"도 생각나는군요. 거의 랩처럼 부르는 이 노래를 배우기 위해서 조그마한 팝송책을 들고 연습을 한 친구들도 있었구요. 이 노래를 다 따라 부른다고 하면 대단하다고들 생각했습니다. 이외에도 생각나는 이름이 아주 많습니다. 홀 앤 오츠와 함께 80년대 최고의 듀오로 손꼽히던 앤드류 리즐리와 조지 마이클의 Wham!의 "Freedom", "Careless whisper", "Wake me up before you go-go"같은 곡이 생각납니다. 컬쳐클럽과 보이 죠지의 "Karma Chameleon"은 보이 죠지의 여장과 함께 화제를 모으며 많은 인기를 모았었구요. 다이어 스트레이츠의 "Money for nothing", "Walk of life"같은 좋은 곡들도 생각납니다. 그리고 스티비 원더의 "I just called to say I love you"는 또 얼마나 대단했었는지... 라이오넬 리치의 "Say you, say me", 빌리 오션의 "There'll be a sad song" 과 "When the going gets tough, tough gets going"도 생각나고, 영화 탑 건(Top Gun)의 주제가였던 케니 로긴스의 "Danger zone", 스타쉽의 "We built this city"와 "Sara" 그리고 "Nothing's gonna stop us now", 누구나 책받침 하나쯤 갖고 있던 미녀의 대명사 브룩 쉴즈에 맞선 소피 마르소가 출연한 영화 라붐의 "Reality", "Your eyes", 그리고 피비 케이츠의 정말 포근한 노래 "Paradise", 영화 고스트 바스터즈의 주제가, 뱅글스의 "Manic monday", "Walk like an Egyptian", 하트의 "These dreams", "What about love", 필콜린스의 "One more night", ... 끝도 없이 많은 이름들이 생각납니다.

 

그렇게 팝 음악을 즐기다가 어느날 하드락을 비롯한 다른 쟝르쪽으로 갑자기 돌아서게 된 계기가 있었습니다. 고등학교 1학년 때던가 2학년 때던가 기억은 잘 나지 않는데요. 김기덕의 2시의 데이트에서는 매년 여름방학, 겨울방학 때 상반기-하반기 결산을 했었습니다. 상반기에 가장 인기를 모았던 곡을 모아서 방송을 해주는 특집 기획이었죠. 때문에 평소에 녹음 하다가 잘린 곡들을 (곡 나가고 있는 중간에 곡 소개 하며 끼어드는 디제이가 제일 미웠습니다;;) 녹음할 수 있는 절호의 찬스로 생각해서 공테입도 준비해놓고 기다렸었습니다. 여느 때와 다름 없이 한 며칠 녹음을 했는데, 갑자기 허망하게 생각이 되더군요. 내가 내년에도 내년 인기 곡을 또 이렇게 하고 있을 것이고 그 후에도 계속 그렇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 날 오후에 나도 평생 들을 수 있는 음악, 최소한 몇 년 이상을 즐길 수 있는 음악을 찾아 들어야겠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서 처음으로 새벽 1시 KBS FM의 그 이상한 방송을 들어보게 되었습니다.

전영혁의 25시의 데이트와 롹 음악

아직도 잘 기억이 납니다. 앨범 전체를 방송해주는 코너인 "25시 특선"에서는 그날 마이클 쉥커 그룹(MSG)의 일본 부도칸 라이브를 틀어줬습니다. 그 날 처음으로 자세하게 헤비메틀 음악을 들었습니다. 무엇을 알고 들었던 것은 아니어서 그냥 새롭다는 느낌만 들었구요. 도대체 이런 음악은 어떤 매력이 있어서 새벽에 잠도 안 자가며 듣는 사람들이 있을까 궁금해 하며 녹음을 하고 반복해서 듣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함께 방송된 곡들은 존케일의 "Pablo Picasso", "Living it up to you" 그리고 후렴구가 인상적인 Snowie White의 "Land of freedom", Gary Boyle의 블루스 연주곡이었습니다. 처음으로 본격적으로 락음악을 들으면서 뭔지 모를 설레임을 느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기만 합니다.

 

Source: 시사저널

얼마 뒤부터는 자연스럽게 일반적인 팝음악들과는 소원해져 갔습니다. 주로 "25시의 데이트"에서 방송되는 곡과 밴드를 위주로 음악을 찾아가며 듣게 되었고 그렇게 락 음악 팬이 되어갔습니다. 당시 "25시의 데이트"는 시작부터 끝까지 시종 신비롭다는 느낌이 강한 프로그램이었습니다. Art of Noise의 시그널 뮤직이 그랬고, 극도로 제한된 디제이의 코멘트도 그랬습니다. 중간에 읽어주는 기괴한 시들과 엽서를 보내는 사람들의 이상야릇한 "ID"도 묘한 느낌이었습니다. 지금도 "빈센트 반 고호의 왼쪽 귀"라는 닉네임을 기억하는 분 많이 계실 겁니다. 엽서 사연도 섬세한 감정을 표현한 것들이 많아서 프로그램 전체가 한마디로 안개에 쌓인 느낌을 주었습니다. 방송 시간대도 그랬구요.

 

이후 여러 팝 프로그램들이 폐지되고 초토화된 와중에도 전영혁의 "25시의 데이트"는 "1시의 데이트", "음악세계" 등으로 이름을 바꾸어 오며 여전히 좋은 음악들을 소개해주는 전문 음악 프로그램으로 남아있습니다. 90년대 중반에 잠시 성시완씨가 MBC FM 디스크쑈에 이종환의 후임으로 들어와서 방송을 하기는 했었지만 디스크쑈의 주된 청취층이 이른바 이지-리스닝(easy-listening) 계열의 음악을 듣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열광적인 성시완 팬, 열광적인 프로그래시브락 팬들의 성원에도 불구하고 오래 가지 못했습니다. 저로서는 말로만 듣던 "음악이 흐르는 밤에의 성시완" 목소리를 들어볼 수 있었다는 것이 흥미로왔지만 실상 그 때즘엔 이미 듣고 있던 음악이 정해져 있었기 때문에 그 프로그램의 영향은 별로 받지 않았습니다.

 

이런 생각도 해봅니다. 세월의 흐름에 맞게 음악 듣는 취향도 바뀌어가는 것이 일반적이지만 감수성 예민한 중고등학교 시절에 영향을 준 음악은 역시 아무리 나이를 먹어도 정겹게 느껴지고 자주 듣게 되는 것 같습니다. 지금도 80년대를 추억하면서 당시 음악을 들으며 가슴이 따뜻해지는 것은 음악 자체가 그래서였다기보다 역시 당시의 느낌들, 망각에 의해 예쁘게 채색된 그 옛 기억들이 되살아나기 때문이겠죠. 저로서는 그런 시기에 아주 좋은 음악 프로그램을 통해서 훌륭한 음악들을 접할 수 있었다는 것이 행운이었다는 생각입니다.

음악 세계와 월간 팝송

80년대의 국내 음악 잡지에 대한 얘기를 조금 해볼께요. 70년대부터 존재하던 훌륭한 음악잡지 중 하나가 "월간 팝송"이란 책인데 정말 괜챦은 책이었습니다. 유행을 무작정 따라가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너무 깊게 파고들어서 소수의 매니액들만 만족시키는 책도 아닌 그 중간쯤에서 양자를 절묘하게 절충시켰던 책입니다. 월간팝송은 팝 잡지의 불모지였던 우리나라에 팝 잡지는 이러 해야 한다는 틀을 선구적으로 보여주었습니다. 역대 락 보컬리스트들을 비교한 글이라든지, 레드 제플린과 딥 퍼플을 비교한 글은 후에 다른 음악잡지에서 그대로 베낀 레파토리였습니다. 이 월간팝송이라는 잡지의 편집장을 하던 사람이 위에서 말씀드린 전영혁 씨입니다.

 

그런데, 그처럼 훌륭한 음악잡지가 왜 오늘날 자취를 찾을 수 없게 되어 버렸을까요? 여기서 자본력을 바탕으로 뛰어든 한 잡지의 이름을 얘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이름은 "음악세계"입니다. 월간팝송이 높은 인기를 누리는 것을 본 중앙일보가 거의 유사한 포맷에 유사한 기사로 시장에 들어오지요. 다른 점이 있었다면 월간팝송보다 훨씬 큰 판형에, 당시로는 엄청난 선물인 테이프를 부록으로 끼워주기도 하고, 값비싼 팝스타 브로마이드를 배포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월간팝송도 판형을 키우고 비슷한 방식으로 대응하다가 자본의 힘에 밀려 문을 닫고 맙니다.

 

그로부터 얼마 뒤, 음악세계는 월간팝송과 정말 똑같은 형태로 바뀌고 급기야 월간팝송의 편집부장을 하던 전영혁씨가 "전영혁의 디스코그래피"라는 섹션을 맡아 연재하기에 이릅니다. 그런데 음악세계가 월간팝송과 본질적으로 다른 점이 있었다면 월간팝송은 좋은 음악을 발굴해서 팬들을 리드해 나가자는 정신 하에 만들어지고 있었고 또 팝 음악이나 롹 음악을 체계적으로 정리하는 작업을 꾸준히 해왔던 것에 반해 음악세계는 팬들이 좋아할 만한 것을 위주로 상업성을 우선순위에 두었다는 점입니다.

 

음악세계는 결국 80년대 후반부터 서서히 일기 시작한 가요 붐에 편승하다가 이후 자취도 없이 사라집니다. 그 뒤로 월간 핫뮤직(Hot Music)이 나타나기는 합니다만 핫뮤직은 다소 락에 편향된 감이 있었고 팬들은 이미 팝보다는 가요를 더 즐겨 듣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팝음악의 쇠퇴와 함께 훌륭한 음악 잡지였던 월간 팝송도 영원히 사라져 버렸습니다.

월간 팝송 사진 몇 장과 핫뮤직, 그리고 뮤지션들을 위한 음악잡지인 뮤직랜드 표지 사진 올려봅니다.

 

 

월간팝송 표지
당시 광고, 블랙싸바쓰의 성음을 통해 발매된 Heaven and Hell 앨범 소개가 보이네요
비틀즈를 소재로 한 만화
1986년 Master of puppets 앨범 발매 당시의 메탈리카 소개 글 
롹 음악의 계보를 총정리한 책 속의 책 Rock Encyclopedia
당시의 신보 소개, 알카트라즈의 Live Sentence 앨범이 소개되어 있네요
월간 핫뮤직과 뮤지션과 음악인을 위한 전문적인 음악잡지 뮤직랜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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