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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

영화 굳 윌 헌팅 (Good Will Hunting)

이명헌 2020. 6. 27. 13:43

IT'S NOT YOUR FAULT

1999-11-9

 

굿 윌 헌팅(Good Will Hunting)이란 영화를 보셨습니까?

맷 데이먼이라는 배우가 직접 각본을 쓰고 주연을 맡은 영화입니다.

뛰어난 수학 천재이지만 불운한 가정 환경에서 깊은 상처를 입은 채 성장한 윌이 어떻게 마음의 문을 열고 진정한 우정을 알게 되는가를 그리고 있는 일종의 휴먼드라마입니다.

 

이 영화는 배경부터 무척 독특합니다.
보스톤. 하버드나 MIT 같은 대학들이 모여있는 곳이면서 또한 남부에 빈민가가 존재하는 곳입니다. 주인공 윌(Will)은 보스톤 남부 출신의 청년으로 정규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했고 아버지의 폭력에 의한 깊은 마음의 상처를 묻어두고 있는 청년입니다.

 

그는 MIT에서 청소부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어느 날 우연챦게 수학과 교수가 학생들에게 풀어보라고 칠판에 적어 놓은 까다로운 퀴즈를 몰래 풀어버립니다.
수학과 교수와 학생들은 놀라운 숨은 천재가 누구인가에 대해 궁금해 합니다.
수학과 교수 제럴드 램보는 주인공 맷 데이먼을 찾아나섭니다.

 

 

이 영화는 그런 흥미진진한 상황과 함께 몇 가지 점에서 특히 더 관심이 갔습니다.

먼저 영화의 배경이 미국 대학 사회라는 것에서 미국 학계의 모습을 엿볼 수 있다는 점이 흥미로왔습니다.

그리고 윌이 고아라는 환경 속에서 자라온 천재라는 점.

윌의 불운한 성장 과정은 때문에 마음에 굳건한 성벽을 쌓아 왔고 커다란 피해의식으로 자아를 보호하려 합니다.

 

 극 중 심리학과 교수이자 심리치료사인 로빈 윌리엄스는 이런 윌이 간직하고 있는 깊은 마음의 상처 - 버림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과 이에 대한 방어기제 - 를 어루만지고 따뜻하게 감싸주며 건강한 사랑을 배울 수 있게 합니다. 이런 일련의 과정이 너무도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는 점이 심리학에 관심을 갖고 있는 저에게 이 영화가 더욱 각별하게 느껴진 이유였습니다.

 

영화의 몇 장면을 얘기해 보겠습니다.

It's not your fault

 

영화는 윌이 마음의 병을 치유해가는 과정을 차분하면서도 생생하게 그려나갑니다.

어렵게 살아가는 노동자인 아버지의 폭력에 시달리다가 얼마 지나지 않아 부모 모두를 잃어버리는 큰 고통을 겪으며 성장한 윌.

 

그는 타인의 애정을 잃어버리는 것에 강한 두려움을 갖게 됩니다.

윌은 버림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다른 사람이 정말로 자기 안으로 들어오는 것을 허용하지 않습니다.

진심을 줬다가 내팽개쳐지는 것이 두려워 항상 일정 선에서 관계를 닫습니다.

윌은 아버지에 의한 가혹한 폭력과 부모의 사랑을 받고 싶다는 열망 사이에서 스스로를 공격하는 쪽을 택합니다.

 

윌은 겉으로는 아무렇지도 않은 듯 거칠게 행동하지만 사실은 암울한 성장사를 늘 의식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가정사를 누구와도 나눌 수 없었던 윌은 불운한 환경을 부끄럽게 생각하며 철저하게 감추려 합니다.

마음의 장벽을 더욱 공고이 합니다. 어느 누구라도 벽을 너머 윌의 진정한 아픈 과거를 들여다 보려하면 관계를 끊습니다. 천재 윌의 화려한 언술과 엄청난 지식 뒤 편에는 이처럼 두려움에 떨고 있던 연약한 자아가 숨어 있었습니다.

연인 스카일라가 윌의 형제 관계나 가정에 대해서 물었을 때의 대답.

 

"Well, it's normal. Nothing special."

 

윌의 이런 면은 연인 스카일라(Skylar)와의 관계도 오래 지속되지 못하게 합니다.

스카일라는 물려받은 유산으로 유복한 환경 속에 하버드를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녀는 자신의 행운을 별로 좋게 생각하지는 않았습니다.

메디컬 스쿨에 진학하기 위해 학부를 공부하고 있던 스카일라는 하버드 바에서 우연히 만난 윌의 천재성에 끌리면서 '그 남자'를 알고자 합니다. 하지만 그것은 '장벽 그 너머'를 도발한 것이었습니다.

윌은 스카일라가 자신의 이상형임을 알면서도 관계를 끊어버립니다.

 

 

 

윌이 파괴적인 행동을 하며 극구 지키려 했던 것이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버림받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사랑마저 포기할 수 있을 정도로 거대한 것일까요?

유복해 보이는 스카일라가 자신의 비참했던 과거를 알고 나면 떠나버릴 것으로 미리 생각했었던 윌.

그는 버림 받기 전에 내가 버리겠다는 선택지를 택합니다.

 

하지만 윌을 진심으로 사랑했던 스카일라는 그의 모든 것을 알고 싶어했습니다. 너무나 자연스런 여자의 욕구였습니다. 그것이 그렇게 위협적이었을까요? 윌의 연약하게 떨고 있는 자아는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스카일라를 외면하게 됩니다.


불행히도 윌은 자신의 문제에 대해서 잘 알고 있었습니다.

수많은 심리학 지식을 동원하며 자기 자신을 설명하고 있었습니다.

그런 윌을 치료하겠다고 덤볐다가 실패한 여러 명의 심리치료사들의 모습에서 우리는 이론적으로만 아름다운 이론의 쓸쓸한 모습을 보게 됩니다.

 

이들과 달리 "Trust"를 강조하던 로빈 윌리엄스.

그는 요란하고 요사스러운 심리학 이론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내담자와 상담자가 맺는 바로 그 '신뢰'만이 내담자 마음의 문을 열게 한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그는 윌의 천재성이 심리적인 문제 때문에 파괴적으로 자기자신을 공격하는 것에 너무나 안타까워 합니다.

더구나 그 자신, 윌과 출신 배경이 똑같았기 때문에 어렸을 때 당했던 폭행의 경험이나 파탄난 가정이 어떤 마음의 상처를 안겨주는지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로빈 윌리엄스는 윌의 상처를 보듬어 안고 진정한 '친구'(soul mate)가 되어 주고자 합니다.

윌의 천재성을 이용하는 데만 관심이 있는 제럴드 램보 교수의 섣부른 성급함으로부터 윌을 지키기 위해 옛 동창과의 욕설 섞인 싸움마저 마다 하지 않습니다.

 

로빈 윌리엄스 관점에서 인생의 성공은 다른 사람들이 알아 주는 것을 얻는 것이 아니라 바로 자기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할 수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는 윌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스스로 찾아내고 추구해 가기를 바랐습니다.

천재 윌 이전에, 한 인간으로서의 윌의 행복에 관심을 갖고 있었습니다.

로빈 윌리엄스는 윌에게 묻습니다.

 

What do you want? What wind your clock?
 

 

그런 마음으로 윌에게 다가서는 로빈 윌리엄스를 윌은 또 한 명의 시답쟎은 심리치료사로 여기며 농락하려 듭니다.

윌은 로빈 윌리엄스 방에서 그가 그린 그림을 봅니다.

로빈은 자기 자신보다 더 사랑하던 아내를 병으로 잃은 뒤 죽은 아내를 깊게 그리워 하며 세상에서 한 발짝 비켜서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자신의 심경을 폭풍우 한복판에서 조각배를 타고 가던 모습으로 그렸던 그 그림.

 

 

 

 

윌은 그림의 의미를 즉시 깨닫고 현란한 '지식'을 동원해서 로빈 윌리엄스의 마음을 무차별적으로 노출시킵니다.

'가슴'이 아닌 '머리'로 사람의 마음을 읽을 수 있다고 믿으면서 제멋대로 떠들어 대며 소중한 추억을 난도질합니다.

이것이 바로 여러 심리치료사들이 윌에게 행했던 짓이었습니다.

공감은 없고, 분석만이 가득한 심리 '상담'.

 

로빈 윌리엄스는 윌에 의해 어지럽혀진 마음을 추스리지 못해 일주일 간 아무 일도 못하며 깊은 생각에 잠깁니다.

일주일이 지난 뒤 윌과 만난 그는 다음과 같이 윌의 어리석음을 깨뜨립니다.

 
"너는 천재다. 그것은 이 세상 모든 사람들이 다 인정한다.
하지만, 네가 갖고 있는 지식이란 죽은 지식이다.
너는 미켈란젤로의 작품을 실제로 한 번도 보지 못했지만
그의 예술적 성향, 연대기, 성적 취향 등을 줄줄 떠들어 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너는 시스틴 성당 천정의 미켈란젤로 작품을 올려다 보았을 때 느껴지는.
바로 그 감동.
그건 모른다.
.
.

너는 죽어가고 있는, 너무도 약해서 부스러져 버릴 것 같은,
그런 사랑하는 여인의 손을 잡고 지켜봐야 하는 그 마음을 모른다.

너는 진정한 '상실'을 모른다.
왜냐하면 진정한 상실이란 무엇인가를 너 자신보다 더 사랑했을 때만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너를 볼 때.
자신감에 찬, 인텔리젼트한 친구를 보는 느낌을 받지 않는다.

오히려 나는,
거칠고,
오만한,
한 철부지의 모습을 본다.


 
너는 모든 것을 다 아는 척하면서 내 그림을 통해 내 삶을 망쳐버렸다.

너는 고아다.
만약 내가 "올리버 트위스트"를 읽었기 때문에,
고아로서 겪었던 너의 어려움과,
고아인 네가 어떻게 느끼고 있는지를 알 수 있다고 떠들면 어떻겠느냐.
.
.
.


개인적으로, 나는 네가 떠들어 대는 얘기에 하나도 관심이 없다.
그런 얘기들은 엿 같은 책만 들추면 다 나오는 얘기들이니까.
그런 것으로부터는 '너'에 대해서 아무 것도 알 수가 없으니까.
.
.
.

나는 '너'를 알고 싶다. 네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바로 그런 얘기들이 내 마음을 확 잡아 끈다.
그러면 나는 네 마음 속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그러나 넌 그런 얘기는 안한다.
너는 너 자신에 대해 얘기하는 것에 공포를 느끼니까.
.
.
.
.
.
.

이젠 네 차례다."

 

윌에게 새로운 숙제를 던져준 로빈 윌리엄스.

그 뒤의 윌의 마음이 열리게 되는 감동적인 과정은 영화를 직접 보시기 바랍니다.

 

 

학문 그리고 학자

또 하나 생각나는 장면은 윌과 친구들이 하버드 바에 놀러갔다가 하버드 학생들과 마찰을 빚은 사건입니다.

그 곳에서 한 학생은 윌 일당에게 무안을 주기 위해 너네들 무슨 수업을 듣느냐는 식으로 시비를 겁니다.

윌의 친구들은 대학과 전혀 관계없는 노동자였습니다.

역사학을 듣는다고 거짓말을 한 윌의 친구 쳐키에게 무안을 준다며 미국사를 떠들어대는 마이클 볼튼 클론.

 

옆에서 보다 못한 윌은 그 시답쟎은 친구가 외워대는 역사학 관련 얘기를 그 얘기가 나온 책의 페이지까지 정확하게 밝히며 얘기합니다.

 

"너는 고작 공공 도서관의 책을 통해서 배울 수 있는 것을 배우기 위해 매년 수천만 원의 학비를 쏟아 붓고 있다. 그리고 네가 떠들어 대는 얘기 중 과연 너의 주장은 뭐가 있냐. 넌 앵무새에 불과하다."

 

그 앵무새는 이렇게 얘기합니다.

 

"하지만 난 학위를 갖게 되. 그러면 너는 내가 스키 여행을 떠날 때 우리 애들에게 프렌치 프라이를 팔겠지."

 

그 다음로 생각 나는 부분은, 로빈 윌리엄스와 친구인 수학과 교수 제럴드 램보 사이에서 벌어지는 갈등입니다.

제럴드 램보는 로빈 윌리암스와 함께 대학을 다닌 동창입니다. 제럴드 램보가 무난하게 학자의 길을 걸으며,수학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필즈 메달을 수상한 성공적인 학자였던 데 반해, 기숙사 룸메이트였던 로빈 윌리엄즈는 그런 류의 성공을 멀리하며 자기 인생에 충실해 나갑니다.

 

제럴드 램보는 동창회에도 나타나지 않는 로빈 윌리엄스를 'failure'라며 싸늘하게 평가합니다.

로빈 윌리엄스는 사회적 성공만을 강아지처럼 쫓아다니며 잘난 체 하기 바쁜 동창회를 경멸합니다.

같은 기숙사 방을 쓰며 학교를 다니던 두 친구는 극명하게 대비되는 길을 걸어가게 됩니다.

이 두 사람이 우정과 반목을 겪는 것을 보면서, 남들에게 보여지는 성공과 자기 자신의 인생에 충실한 성공 사이의 차이에 대해 생각해 보았습니다.

 

간간이 등장하는 제럴드 램보 교수의 모습은 학자의 이면을 들여다 보게 합니다.

금발 미녀를 앞에 두고, "까다로운 이론은 아름다운 심포니 같지요.." 라며 허세를 부리는 모습.

필즈 메달을 수상함으로써 세계 최고의 수학자라는 공인을 받았음에도 윌 같은 천재가 바깥 세상에 얼마나 더 있을지 모른다는 것에 느끼는 좌절감과 불안감.

램보 교수는 윌을 보며, 영화 아마데우스에서 안토니오 쌀리에르가 볼프강 아마데우스에게 느낀 것과 같은 질투와 찬탄이 복합된 감정을 드러냅니다.

 

 

 

또, 로빈 윌리엄스와 램보가 정말 윌을 위한 방향이 무엇인가를 놓고 벌인 논쟁 역시 재밌는 생각거리를 던져 줍니다.

 

제럴드 램보: "제대로 이끌어 주는 사람이 없었다면 앨버트 아인슈타인도 스위스 특허청의 말단 공무원으로 끝나버렸을 것이고, 아인슈타인에 의해 창조되었던 여러 가지 과학적 업적은 불가능했을지 몰라. 윌은 그런 재능을 타고 났어. 우린 윌에게 옳은 방향을 제시해 줘야만 해."

로빈 윌리엄스: "그런 학문적 성취의 궁극적 목적이 과연 뭔가? 태드 카잔스키 아나? 60 년대에 미시간 대학을 졸업한 친구로 엄청난 수학적 업적을 남겼지. 특히 Bounded harmonic functions에서. 그리고 그 친구는 버클리에 가서 조교수로서 굉장한 가능성을 보여준 다음 몬태나에 가서 모든 경쟁을 장난같이 뛰어넘었단 말야. 그가 바로,
유나바머야."

 

명화

마지막으로 생각나는 것은 친구 쳐키의 모습입니다. 너무나 자연스럽게 미국 노동자 계급을 연기해내는 배우 벤 에플렉은 실제로 맷 데이먼과 절친한 사이인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굿 윌 헌팅의 각본도 같이 썼다고 합니다. 벤 에플렉은 굿 윌 헌팅 이후에 스타덤에 올라서서, "Shakespear in love" 같은 영화에서 만나볼 수도 있었습니다.

 

친구 쳐키가 윌에게 '떠나라'고 충고하는 장면이 생각납니다. 말 한 마디 한 마디에 진심이 담겨 있었기에 거칠고 투박하지만 친구를 생각하는 진정한 배려를 느낄 수 있었습니다. 진실된 말은 결코 화려하지 않으나 사람을 움직인다는 것을 쳐키가 윌에게 충고하는 장면을 보면서 잘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이런 영화가 명화일 것입니다. 꽉 짜여진 시나리오와 아름다운 대사들. 도저히 연기로 보이지 않는 연기. 삶의 모습, 마음을 깊숙하게 건드리고 들어가는 이야기들. 그리고 현실의 적나라함을 멋스럽게 풍자하는 장면들까지. 마음의 상처, 사랑, 가정, 우정, 성공에 대해 많은 것들을 생각하고 느끼게 해주는 명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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